My Cinema Aphorism_92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92

by 김정수

CA456. 오즈 야스지로, 〈즐겁게 걸어라〉(1930)

처음부터 대놓고 서슴없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카메라. 오즈의 영화를 후기작부터 보기 시작한 탓인지, 이 ‘움직임’이 너무나 낯설다. 오즈의 영화를 이 영화와 같은 초기 무성영화부터 차례로 〈꽁치의 맛〉(1962)까지 순서대로 보았다면 어땠을까. 허우 샤오시엔과는 정반대 방향. 카메라에 대한 의식, 그 미분화상태. 충분히 깔끔하게 정리해 낼 수 있는 줄거리. 또는, 그런 심플한 줄거리가 있는 영화. 그런 줄거리로 영화를 만들던 시대. 부둣가에서 주인공이, 실은 동료이자 동업자인 소매치기의 몸을 거짓으로 검사하는 척할 때, 문득 끼어드는 배의 마스트. 이 느닷없는 인서트. 뒷날 오즈 영화 특유의 인서트의 원형. 전반적인 분위기에 드리워져 있는 할리우드 영화의 짙은 그림자. 어쩌면 오즈의 궤적은 임권택의 궤적과 가장 비슷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발전해 갔는가. 이 기준에서 본다면? 가장 일본스러운 세계, 가장 한국스러운 세계. 그 의미심장한 종착역. 이 시기 오즈 영화 속 일본인들은 후기 오즈 영화 속 일본인들과 종 자체가 다른 것 같다는, 어쩐지 외면하기 어려운 느낌. 그 사이에 뭔가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아니면, 역시 변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그 인간을 바라보는 오즈의 눈, 또는 마음일까. 옛날 일본 영화 속 인물들의 움직임과 옛날 한국 영화 속 인물들의 움직임은 어째서 비슷할까. 그것은 현실의 반영일까. 아니면, 저 영화가 이 영화에, 또는 이 영화가 저 영화에 끼친 영향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상호작용. 데이트하는 여자의 삼가는 몸가짐, 고갯짓, 눈짓. 자태의 이 기이한 상동성. 포장길이 아닌 비포장길을 먼지 날리며 달리는 자동차. 씹던 껌을 어딘가에 붙여놓았다가 나중에 다시 씹기. 야쿠자가 정숙한 보통 여자한테 마음이 끌리는 현상. 진짜 사랑을 느끼는 터프 가이. 바닥을 거듭 톡톡 두드리는 한쪽 발로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 보이는 방식. 손목에 있는 야쿠자의 표식. 사랑 때문에 개과천선하는 야쿠자? 자기 정체성 바꾸기와 배신이 맞물려 있는 형국. 유난히 자주 비추어지는, 무엇인가가 놓여 있는 바닥. 사회에 굳건히 뿌리내리기의 어려움. 여자든 남자든, 보통 사람이든 야쿠자든. 잘 안 풀리는 인생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 경찰은 어째서 꼭 새로운 삶의 문턱에서 훼방을 놓는가. 그것이 훼방으로 읽히는 것은 이것이 그저 영화이기 때문일까. 둘의 재회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배려의 손짓들로 이루어진 인서트. 공적으로 인정받는 새 출발. 어쩌면 오즈답지 않은 이 시기 오즈 영화의 이상한 매력.


CA457. 구스 반 산트, 〈밀크〉(2009)

정치란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한테 표를 주는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하고,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것. 그러니 정치를 통해서 무언가를 이루려 할 때 그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이질적인 일부분을 없애버리면 나머지가 행복해진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무언가를 삭제하거나 제거하는 방법에 대한 이상한 기울기. 정치와 운동의 차이. 정치는 그만둘 수 있어도 운동은 그만둘 수 없다는 것. 인권의 보장은 고사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조차 어렵다는 것. 또는 그 수준. Equal Rights. 그 수많은 편견은 애초 어떻게 생긴 것일까. 암살을 해결책으로 여기는 심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숀 펜―.


CA458. 팀 버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

흑백영화가 아니라, 색채영화를 보아야 하는 이유. 무성영화가 아니라, 유성영화를 보아야 하는 이유. 2D영화가 아니라, 3D영화를 보아야 하는 이유. 이 이유들이 분명하지 않다면 그 어떤 것도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 그저 상업적인, 또는 산업적인 흐름에 생각 없이 몸을 맡기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이 영화를 굳이 3D로 보아야 할 까닭이 있을까. 어쩌면 ‘3D라는 장사’를 하려는 쪽의 농간에 관객으로서 놀아나는 일은 아닐까. 그렇다면 거기에 우리의 항의나 이의제기는 아마도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저 재편일 뿐이다. 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렇다면 3D 다음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역시 게임이 하나의 모델이 되는 것일까. 이것은 온전한 팀 버튼의 상상력일까. 미아 와시코우스카가 맡은 앨리스는 역시, 이야기 속 설정이야 어찌 되었든, 조금 나이 들어 보인다. 그래서 얼마간 앨리스답지 않은 느낌이다. 어쩌면 바로 이것을 노렸을지도 모르지만,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조니 뎁을 빼놓고 과연 이 영화에서 적극적으로 취할 요소가 또 있을까. 팀 버튼은 나이 든 앨리스를 어쩌자고 이런 액션의 공간에 던져놓았을까.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이나 〈배트맨〉(1990) 쪽으로 갔어야 했던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전체관람가 등급은 아무래도 팀 버튼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 적어도 스필버그보다는. 아무리 이것이 디즈니의 프로젝트라 할지라도. 어쨌거나 나만의 앨리스, 내 기억 속의 앨리스, 내 마음속의 앨리스는 아니다. 앨리스에게 어울리는 것은 모험이지 활극이 아니다. 모험과 활극을 구분하는 섬세한 감각을 팀 버튼은 잠시 유보시켜 놓은 것일까.


CA459. 리들리 스코트, 〈아메리칸 갱스터〉(2007)

범죄. 마약. 갱스터. 삶의 방식, 또는 윤리의 문제. 무엇이든 조직이 되면 함부로 손댈 수가 없다. 아이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도시 라스베이거스. 댄젤 워싱턴과 러셀 크로우. 언제나 본인이 손수 타자를 치는 형사들. 마약의 공급지가 되어버린 베트남. 그렇게 이용되는 장소. 그 배경. 권력 이양 또는 업무 분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에브리훼어. 계약 성사, 또는 소울 브라더. 자기 삶을 통제하여 정돈시킨다는 점에서 형사가 갱스터보다 아랫길이라는 것. 어째서? 박봉의 생활고. 그렇다면 돈으로 모든 문제가 정말 해결될까. 사람은 누구나 돈을 얻기 위해서 취한 방식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곧, 한 번 벌어들인 돈을 또 벌기 위해서는 똑같은 방식을 다시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범죄는 영원히 계속된다. 일종의 중독. 댄젤 워싱턴의 걸음걸이와 러셀 크로우의 걸음걸이. 전화는 어째서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걸려 오는가. 전화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방해의 도구다. 이것은 알바레즈가 《20세기의 지적 모험》에서 이미 보여주었던 통찰이다. 삶의 방식은 달라도 삶의 목적은 다를 게 없다는 것. 훔치지 못하게 하려면 발가벗겨라. 가장 쉽게 눈에 띄는 사람이 가장 약하다는 것. 어째서 인간은 상승하려고만 하는가. 블루 매직. 순도 높은 마약. 마약의 공정가격이란? 조 프레이저,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의 시대. 범죄의 교육. 범죄자를 감옥에 보내는 것과 범죄를 근절시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 기도와 마약 흡입. 은총과 삶의 지속. 마약의 공정거래. 마약 경제. 밥줄이 거기에 달린 사람들이 정부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늘어난 상태. 가정에 소홀한 청렴 경찰과 가정에 충실한 부패 갱스터. 가족은, 아내는 어떤 가장, 어떤 남편을 더 좋아할까. 아니, 바랄까. 청렴한 경찰의 가족은 힘겹게 살고, 부패한 갱스터의 가족은 풍족하게 많은 걸 누리며 산다. 닉슨 시대. 베트남전 시대. 돈이 늘어나면 적도 늘어난다. 군대가 떠나도 마약 재배지는 남는다. 패전과 몰락의 서사.


CA460. 도요타 토시아키, 〈공중정원〉(2005)

자신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느냐고 당돌하게 묻는 딸과 그 딸한테 너는 러브호텔에서 만들어졌다고 거리낌 없이 말해주는 부모. 그렇게 느닷없이 태어난 생명들. 집이 땅 위에 있는 것과 공중에 있는 것의 차이. 자신이 잉태된 곳을 남자친구와 함께 찾아가는 딸. 그러니까 부모가 관계한 곳을 찾아가는 셈. 들키지 않는 거짓은 거짓이 아니다. 어른다운 어른은 어디에 있는가. 러브호텔엔 창이 없다. 또는 창이 없는 러브호텔. ‘피투성이로 울면서 태어나는’ 인간.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 참고 살면 내가 속병 들고, 참지 않으면 관계가 파국에 이른다. 그러니까 관계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풀고 살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가족이 유지되는 것은 허위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돈이 없어 아이스크림을 하나밖에 살 수 없었던 엄마. 딸은 그 아이스크림을 엄마한테 한 입도 주지 않았다. 세상에는 그런 일을 상처로 간직하는 엄마도 있을 수 있다는 것. 인간 실격. 엄마 실격. 브람스 교향곡 제3번 3악장. 비밀을 지키는 것과 가족을 지키는 것의 상관관계. 비밀 없이 사는 것이 정말 가족을 위하는 길일까. 아무것이나 다 입에 올리는 세대와 그런 것은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세대. 정말 중요한 것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대. 그래도 함께함으로써 무언가 위안이 되는 가족이라는 것. 둥근 식탁. 4인용 식탁. 마침내 가족의 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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