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93
CA461. 샘 레이미, 〈드래그 미 투 헬〉(2009)
집을 빼앗기는 문제, 또는 집을 빼앗는 문제. 돈 문제, 생존 문제. 저주라는 테마. 저주하는 자와 저주받는 자. 저주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생활 속에서 억울한 것은 그 여자인데, 어째서 그 여자가 저주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이 부당함. 또는 부당한 느낌. 떨쳐버리기 힘든. 이 느낌을 얼마나 온전하게 유지하느냐에 이 영화의 성패가 달려 있는 셈이다. 마땅한 고생과 부당한 고생의 극적 쓰임새. 어느 쪽이 관객에게 더 호소력이 있는가. 고양이와 악령. 저주의 주체가 누구냐는 문제. 악령일까, 그 악령을 불러내는 마녀일까. 저주가 망가뜨리는 것은 무엇일까. 몸일까, 영혼일까. 아니면, 관계일까. 저주의 목표는 무엇일까. 저주는 어째서 집요한가. 악령이 누군가를 괴롭힘으로써 기쁨을 느낀다면, 악령이 원하는 것은 괴롭힘일까, 기쁨일까. 악령은 영혼을 괴롭혀서 행복한 걸까. 그렇다면 결국 악령도 행복을 원한다는 뜻이 아닌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가, 하는 문제. 영매의 한계. 저주받은 자신의 소유물을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면, 그러니까 전가하면 저주가 풀린다. 아니, 그 저주가 옮겨간다. 그러니 저주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저주는 반드시 실현된다. 내 저주를 대신 받을 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복수? 선한 마음이 보답을 받는 경로는? 저주받아 마땅한 사람은 누구인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 노파와 동양인에 대한 편견. 사필귀정, 또는 인과응보. 고백. 자백. 실토. 심판. 단추의 저주. 저주가 심판과 얽혀 있을 때. 또는, 저주가 곧 심판일 때.
CA462. 오즈 야스지로, 〈동경의 합창〉(1931)
깡마른 체구. 꾸부정한 어깨. 형형한 눈빛. 1930년대의 인간. 속옷을 입는 사람과 입지 않는 사람. 또는, 입을 속옷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몸에 맞는 옷을 입은 사람과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 또는, 몸에 맞는 옷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학생들한테 ‘절도(節度)’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었던 시절. 또는, 그런 가르침이 공인되던 시절. 심에 침을 발라서 써야만 했던 연필. 필기도구의 아날로그. 보험회사 직원. 느닷없는 시간 이동. 레코드판이 깨지는 사태. CD가 ‘뻑이 나는’ 사태. 카메라의 수평 트래킹. 사무실의 타자기. 또는, 타자기가 있는 사무실 풍경. 봉급을 줄 서서 현금으로 받던 시절의 정서. 봉급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성립되어 있는 계급 차이의 냉엄함. 떵떵거리기와 굽실거리기. 화장실에서 남몰래 봉투 안의 지폐를 낱낱이 세어서 확인해 보는 절차. 동작의 디테일. 선풍기로 연필을 깎는 설정. 명예퇴직과 불명예 퇴직의 차이. 모든 것이 사장 마음대로이던 시절. 사장의 부채와 사원의 부채. 밑창 떨어진 구두. 아들한테 자전거를 사주기로 한 날 회사를 그만둔 아빠. 아들을 슬프게 하지 않으려면 불의와 굴욕을 감수하며 직장에서 버텨야 한다는 것. 자전거를 갖지 못하게 되어 슬픈 아들과, 그런 슬픈 아들을 둔 아버지. 어느 쪽이 더 슬플까. 아버지의 의무란 그런데도 끝내 참고 직장을 다녀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일까. 화내는 사장과 화내는 아들. 사장과 사원이 대립하는 경우, 옳고 그름을 떠나서 사원이 피해를 봐야 하는 처지라는 것. 실업의 도시, 동경. 아버지의 해고 통보서로 비행기를 접어 날리며 즐겁게 노는 아이들. 가혹한 노동과 보잘것없는 노동의 대가. 이런 생각은 과연 옳은가. 아니, 현실적인가. 부당한 해고와 정당한 해고. 대졸 실업과 고졸 실업.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실업자는 얼마든지 울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럽다. 아니, ‘그마저도’ 부럽다. 생활의 수단인 자전거와 놀이의 수단인 자전거의 차이. 단팥빵. 파리. 인력거.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또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 안의 무언가를 팔아치우기 시작하는 순간. 아무리 삶이 힘겹고 괴로워도 역시 아이들은 천진난만해야 좋은 것일까. 넘쳐나는 실업자, 그리고 가차 없이 진행되는 전쟁. 이것이 양립할 수 있다는 것. 처지가 곤궁할 때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학창 시절의 선생님. 은인. 어째서 은인은 우산을 들고 있는가. 만인환시리(萬人環視裡)의 길거리에서 남루한 모습의 아빠 또는 남편을 발견했을 때. 학창 시절 운동장에서 제식훈련을 할 때의 동작과 길거리에서 식당의 광고전단지를 돌릴 때의 동작, 그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서글픈 일치. 어째서 일자리의 수는 사람의 수와 일치하지 않는가. 약조차 허기를 지우는 구실을 할 수 있었던 시대. 그저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입에 넣는다는 것. 마당 있는 집. 돈과 남편의 굴욕. 아내가 바라는 것은? 마당에 널린 빨래. 그 패기 없이 축 늘어진 모습. 그와 똑같은 모양으로 축 늘어진 남편의 어깨. 이 두 가지의 절묘한 상동성. 행복하게 굴욕을 감수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불경기에도 통하는 먹는장사의 효용. 카레. 항산(恒産)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의 선택지. 파리 잡는 끈끈이. 오즈의 유머. 어째서 살이의 모양새는 이토록 각양각색인가. 어째서 직장은 그만두고 나간 사원을 두 번 다시 찾지 않는가. 직장이 있는 곳으로 삶의 거처를 옮겨야 하는 처지라는 것. 동경을 떠나야 한다는 것. 서울을 떠나야 한다는 것. 이 이동을 삶의 패배나 영락(零落)으로 새겨도 될까. 그것이 과연 맞을까. 오즈 영화에는 어째서 교직에 끝까지 남아 있는 인물이 없을까.
CA463. 제롬 살레, 〈라르고 윈치〉(2009)
1981년의 유고슬라비아. 입양. 무적의 문신. 딱 2프로 모자란 화룡점정. 아킬레스건. 민병대와 N해. 윈치인 라르고, 윈치가 아닌 라르고. 홍콩. 네리오 윈치. 윈치 가문의 시작. 윈츨래프. 양자 또는 후계자. 2백억 달러의 상속자. 외로움은 권력의 대가라는 것. 견딜 수 있으면 상속을 받아라. 삶이 네게 주는 것, 삶이 네게 원하는 것, 너 자신을 형성시키는 것. 그룹을 친자식에게 물려주는 것과 양자에게 물려주는 것과 제삼자에게 물려주는 것의 차이. 크로아티아. 세계 5위 그룹이라는 위상이 갖는 의미. 아들을 결정할 수는 있지만, 아버지를 결정할 수는 없다. 화룡점정의 총알. 기업을 운영하는 전략이 아니라, 기업을 차지하려는 전략. 국가를 운영하는 전략이 아니라, 권력을 쥐려는 전략. 하지만 이 차이는 언제나 무시된다. 주식보유지분. 1933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기업이 어째서 상속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걸까. 국가조차 이제 더는 상속의 대상이 아닌데, 어째서 기업만은? 경영권과 주식배당금. 어느 쪽이 더 실속이 있는 것일까. 역시 경영권일까. 경영 능력과 경영권의 상관관계는? 이것은 이미 돈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회사의 돈과 개인의 돈, 그 경계가 흐릿해지는 지점. 그가 자기 이름을 라르고라고만 말할 때와 풀 네임으로 라르고 윈치라고 말할 때. 그는 아버지의 무엇을 계승하고 있는 것일까.
CA464. 제임스 카메론, 〈아바타〉(2009)
커넥팅. 딥 커넥팅. 깊은 교류. 링크.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온전히 하나가 되고 나면 내가 곧 남이고 남이 곧 나다. 그렇다면 나와 남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그 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자본이다. 〈에반게리온: 파〉(2009, 안노 히데아키·마사유키·츠루마키 카즈야)의 ‘싱크’와 〈아바타〉의 ‘링크’, 그 상동성과 상이성.
CA465. 강대진, 〈사랑〉(1968)
혈액의 성분 변화를 검사해 보면, 그 혈액의 소유자가 사랑에 빠졌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발상. 그리고 그 사랑의 순수성이나 뜨거운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는 발상. 감정의 수치화. 피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서 알 수 있는 것들의 목록. 병들어 죽어가는 정숙한 아내와 아내보다 훨씬 더 젊고 예쁘고 착한 여자 사이에서 그 두 개의 사랑을 공평히 누리고 있는 남자. 김지미와 문희. 신영균과 이순재. 그 당시 한국 영화배우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지금의 배우들보다 더 뛰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표정과 동작, 이라기보다는 몸가짐. 특히 김지미의. 김지미가 진지한 표정만 지으면 갑자기 화면 가득히 뿜어져 나오는 슬픔과 비극의 정서. 지금의 배우들한테서는 이런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무엇이 바뀐 것일까. 단지 연기방식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인간 자체가 바뀐 것일까. 그러니까 그 시대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은 서로 다른 것일까. 멈추지 않는 기침과 피를 토하는 병의 시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의 분위기는 기이하리만큼 말끔히 배제된 화면. 그런 것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독법이 필요한 걸까. 남편의 재혼을 걱정하는 아내라는 캐릭터. 한없이 낯선 도심의 스카이라인. 무대 연극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정형화된 모양새와 리듬으로 걷고 뛰는 사람들. 동작의 스테레오타입. 죽음과 슬픔의 일상화. 그 시대 사람들은 늘 죽음과 슬픔과 비극을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살았던 게 아닌가, 하는 것. 최악의 경우에 대한 상시적인 각오. 남자들의 품위와 여자들의 헌신. 지금의 배우들과는 다른 눈빛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들. 결혼식을 올린 문희가 시집에서(!) 맞이하는 첫날밤.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눈빛과 푸르스름한 빛이 어려 있는 유리창. 공포영화의 공간 설정. 그 당시 여자들의 시댁(媤宅)은 모두 공포스러운 공간이었다는 것. 무식하고 정 없는 시어머니 상.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염치 있는 사람과 염치없는 사람. 점잖은 사람과 거친 사람. 환자한테 돈 걱정 하지 말고 입원하라고 말하는 의사가 있었던 시대. 경성. 채권. 만주.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면 그곳은 만주밖에 없었던 시절. 일부종사라는 이데올로기. 순옥(문희)은 어째서 남편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일편단심으로 섬기려 드는 걸까. 삶의 모든 불행의 국면을 거역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당연했던 시절. 아편. 영화 속의 모든 아내가 남편을 하나같이 ‘여보’라고 부르던 시절. 모든 것이 운명이었듯, 못된 남편 역시 운명이 죽게 한다. 사건의 시작이나 진행도, 사건의 맺음도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운명의 몫이라는 것. 이명세 영화 특유의 창틀.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이 만주에서 땅을 구입한다는 것의 의미. 許農場豫定地(허농장예정지). 1938년 산 원작소설. 춘원 이광수. 이강천 감독의 1957년작 흑백영화를 10년 만에 색채영화로 리메이크한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