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91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91

by 김정수

CA451. 오즈 야스지로, 〈조춘(早春)〉(1956)

‘이른 봄’이라고 할 때와 ‘조춘’이라고 할 때, 그 어감의 차이. 오즈 영화에서 음악의 구실. 물론 류이치 사카모토는 오즈의 영화에서 음악은 최악이라고 평했지만, 내 생각에 오즈 영화야말로 음악에 대한 의존도가 뜻밖에도 꽤나 높다. 인트로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정서적 반응을 거지반 규정하고 들어가는 까닭이다. 멀리서 기적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기차의 정서. 오하이오. 스기무라 하루코의 목소리, 그 압도적인 존재감. 그 거침없는 발성. 남편과 아내 사이에 주고받는 말의 심드렁함을 넘어선 무정함. 모두가 한결같이 한 방향으로만 걸어가는 출근길 풍경의 기하학적인 기이함. 그래서 단 한 사람만 방향을 바꾸어 서거나 걸으면 그 파격이 금세 눈에 띄고, 덜컥 뭔가 의미를 얻는 느낌이 든다. 류 치슈가 왼손으로 담배를 피운다는 것. 둘러앉아 술 마시는 남자들한테 부채질을 해주는 술집 여자. 먹고 자고 일하는 것의 지속성과 일상성, 그 지긋지긋함. 그 여자의 별명이 금붕어인 까닭. 눈동자도 크고 불량스러움이 있어서. 구워 먹을 수도, 삶아 먹을 수도 없어서. 그들은 어째서 등산이나 야유회가 아닌 하이킹을 가는 것일까. 비탈을 걸으면 등산이 되고, 평지를 걸으면 하이킹이 된다. ‘오이’와 ‘어이’의 다른 어감. 어묵은 먹지 않고 곤약만 먹는다. 사무 보는 남자들과 타자를 치는, 또는 타이핑을 하는 여자들. 연애 시절이나 신혼 시절의 애틋함이 사라진 부부관계의 썰렁함, 또는 잔혹함. 이혼녀 친구가 불러일으킨 잔잔한 파문. 남편한테 밥해주기 싫은 아내의 마음. 배우자보다는 친구, 배우자보다는 애인.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잠시 잊는 일상의 무료함. 질투라는 감정을 처리하는 오즈 야스지로의 품위 있는 방식. 심드렁한 듯한 태도 속에 감추어진 질시와 잔인함. 복도에서 전진하는(!) 카메라. 부인은 지루하고, 애인은 재미있다. 둘이 술집에서 키스하는 사이에 인서트로 들어가는 선풍기의 이미지. 밤바다의 아름다움과 낮 바다의 더러움. 아내가 재미없고, 애인이 귀찮아질 때. 관계의 파탄. 그 다양한 징후들. 곳곳에서 퍼져나가는 소문. 막을 수 없는 소문. 권태가 의심으로 이어질 때. 그 사내가 스탠드바에 들어설 때의 흰 신발과 들어선 다음의 검은 신발. 오즈의 드문 실수(!). 한밤중에 남편이 술 취한 직장동료를 데리고 귀가했을 때.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 전우들. 아내가 자꾸 찾아가는 어머니. 질투와 의심은 사랑이 아직 남아 있다는 증거라는 어머니의 말. 오해하는 친구들과 병든 친구. 생활의 불안과 죽음의 공포. 남편의 애인이 집으로 찾아왔을 때. 깊어가는 근심의 부채질. 의심의 빌미. 어린 자식을 잃은 부부. 혈육의 죽음을 안고 사는 부부. 배음으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생활 소음, 또는 타악기 소리. 병든 친구의 죽음과 지방 발령, 또는 좌천. 자식이 느는 만큼 봉급이 오르지 않는 신세. 늙은 어머니의 흘러내린 속치마에 신경 쓰는 젊은 아들. 화해의 타이밍을 놓치면 영영 이별하게 된다는 것. 어머니의 통찰. 직장생활의 허무함. 송별회 자리의,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여자.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비로소 완전한 부부가 된다는 충고. 연기를 내뿜는 공장 굴뚝 인서트. 기차의 속도. 돌아온 아내의 가방. 화해하려는 서로의 노력. 나란히 서서 한 방향을 바라보는 부부. 그리고 마침내, 여전히, 또다시 기차―.


CA452. 오즈 야스지로, 〈맥추(麥秋)〉(1951)

바닷가, 강아지 한 마리. 잔잔한 파도 소리. 새장 속의 새. 지저귐. 즐거운 나의 집. 머리 짧고 뚱한 장난꾸러기 아이들. 이 익숙한 ‘노리코’라는 이름의 하라 세츠코. 그릇을 손에 들고 무릎을 꿇은 채 앉아서 밥을 먹는 방식. 노년이 아닌 중년의 류 치슈. 하라 세츠코의 아버지가 아니라, 오빠(!)인 류 치슈. 하라 세츠코의 걸음걸이, 그 발랄한 격조. 그리고 기차, 아니, 통근 열차. 키타 카마쿠라 역. 하라 세츠코, 그러니까 노리코의 테마.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티보가의 사람들》을 읽는 남자. 숲과 주택가로 둘러싸인 곳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열차의 정서. 손자의 발톱을 깎아주는 할아버지. 직장에서 타자를 치는 여자들.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는 여자들의 낯빛. 퇴근 뒤의 술집 풍경. 할아버지, 큰아버지 부부, 오빠 부부, 나, 오빠의 어린 두 아이. 여기서 ‘나’는 스물여덟 살 난 미혼의 하라 세츠코다. 모두 여덟 명의 대가족이 한집에 산다는 것. 그러니까 나의 결혼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가부키를 보는 사람들. 결혼 문제와 연애 문제. 또는, 결혼을 ‘하는’ 문제, 시집을 보내는 문제. 살아가는 문제. 자그마한 식탁을 가운데 두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있는 풍경. 오즈는 일본의 가족이 살아가는 가옥의 전경(全景)을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카메라는 언제나 집 안에 머문다. 어째서 집 안에서 트래킹을 쓰지 않았을까. 단지 공간의 한계였을까. 교실과 회사. 중절모에 양복, 그리고 가방. 마루에서 내다보이는 정원. 그리고 이웃집. 말 안 듣는 어린 남자아이.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과 여동생을 시집보내는 마음. 시누이를 시집보내는 올케의 마음. 스기무라 하루코가 나타나는 순간 화면 전체가 술렁이는 신기한 현상. 흥신소 직원을 동원하여 결혼상대자의 신원을 알아보는 사람들.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은 아들이 있는 집들. 죽은 가족이 있는 사람들. 그 실종되거나 죽은 가족 이야기를 하다가 장면이 바뀌면 골목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 일요일에 아이들한테 집을 빼앗겨 머물 데가 없는 가장. 딸을 시집보내고 뒤에 남은 자의 쓸쓸함. 허공에 날아가는 풍선을 보고 아이 하나가 울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노인. 혼담이 오가는 상대자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과 나이, 그리고 생김새. 근심에 휩싸이는 가족들. 갈라진 빵조각. 깨어진 아이들의 꿈. 어른들의 고민과 아이들의 고민의 상충, 또는 엇갈림. 아들의 전근을 따라서 사는 곳을 옮겨갈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근심. 사람은 마음이 흘러가는 쪽으로 결국 움직여가게 된다는 것. 며느리 삼고 싶은 여자한테 이미 결혼한 적이 있는 아들의 혼담을 꺼내는 여인. 재혼과 초혼의 갈림길. 이쪽 집안의 기쁨이 저쪽 집안에는 근심이 되는 관계. 너무나 기쁜 나머지 한밤중에 잠을 못 자고 밥을 한 번 더 먹은 모자. 어떤 남자와 결혼하느냐에 따라 나머지 반생의 운명이 결정되는 여인들. 사랑인가, 믿음인가. 믿음이 곧 사랑인가. 어째서 결혼할 것 같지 않은 친구가 가장 먼저 결혼하는가. 여자를 자기 운명으로 끌어들이는 남자와 남자의 운명으로 자신을 끌고 들어가는 여자. 전통적인 결혼의 양태. 나란히 서서 사무실 창밖으로 도쿄 시가지를 내다보는 장면. 도쿄와 아키타. 도시와 시골. 서울과 지방. 시집가는 여자의 죄책감. 이별이 슬프지만, 그래도 가야 하는 관계. 정작 노리코의 결혼식 장면은 보여주지 않고, 시집가는 다른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 그걸 보고 노리코는 잘 지내고 있을까, 하며 시집간 딸을 생각하는 부모의 모습. 그 자신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오즈 야스지로. 어쩌면 그가 결혼으로 변화하는 여인의 운명에 유달리 관심을 두었던 것은 그 탓일까. 과년한 딸을 시집보내는 가족의 내면 풍경을 다루는 데 오즈 야스지로는 분명 남다른 재능을 지닌 감독이다. 기이한 것은, 영화가 아무것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데도 관객은 모든 것을 너무도 상세히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오즈 영화를 아주 특별하게 만든다.


CA453. 오즈 야스지로, 〈만춘(晩春)〉(1949)

기타 카마쿠라 역. 텅 빈 기차역. 다도(茶道). 기모노 입은 하라 세츠코의 뒷모습. 극히 정형화된 예의범절. 따뜻한 계절. 무르익은 봄. 아버지와 딸. 또, 그녀의 걸음걸이. 현대와 과거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풍경. 딸은 금방 자라고, 자라면 시집을 가야 한다. 아니, 아비는 다 큰 딸을 시집보내야 한다. 어른한테 한 손으로 술 따르는 일본식 주도(酒道). 전쟁 때 하였던 강제노동의 기억. 바닷가가 멀지 않은 곳. 자전거 하이킹을 따라가는 카메라.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 〈호남호녀(好男好女)〉(1995) 속의 오즈. 바로 이 장면. 칼로 오이를 자를 때 그 칼날에 오이가 들러붙으면 질투가 많은 것이다. 여자가 루주 칠한 입술로 생선회를 마구 먹는 것을 꼴사납게 보는 세대. 양복에 중절모, 그리고 가방. 익숙한 퇴근길 풍경. 홀아버지와 외동딸의 저녁밥 겸상. 혼담을 마다하는 딸의 심리. 타이피스트와 속기사. 말 안 듣는 소년. 딸의 결혼과 아버지의 재혼. 각기 그 사태를 대하는 마음결의 차이. 질녀의 결혼과 오빠의 재혼. 고모와 아버지. 게리 쿠퍼를 닮은 남자. 아버지를 이해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외동딸. 아버지의 재혼 상대에 대한 딸의 마음. 이건 질투일까, 걱정일까. 아버지의 재혼을 막는 대신 자신의 결혼을 허락(!)하는 딸. 아버지의 근심과 딸의 근심. 달아나는 딸과 같은 방향으로 걷는 아버지의 뒷모습. 딸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장래를 걱정하는 딸. 아버지의 재혼을 확인하는 딸의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들에 답하는 아버지의 고개 주억거림. 그 절묘한 각도. 귀에 들리기로는 예스지만 실은 예스가 아닌 답변들. 그걸 아는 딸. 그런 딸을 여전히 설득하려는 아버지. 홀로 된 늙은 아버지는 딸과 끝까지 함께 사는 것을 더 원할까, 아니면 딸을 더는 늦지 않게 시집보내는 것을 더 원할까. 어느 쪽이 더 진심일까. 오즈의 여인들이 결정적인 순간 얼굴을 가리고 우는 것. 눈물을 관객한테 보이지 않으려는 것. 아니, 눈물을 보지 않아도 괜찮도록 관객을 배려해 준다는 것. 노리코가 결혼을 결국 결심한 까닭은? 아버지와 딸의 마지막 이별 여행. 도쿄와 교토. 현재와 과거. 딸과 보내는 마지막 여행의 밤, 아버지는 어째서 그토록 빨리 잠이 들어버린 것일까. 지금이라면 노리코는 과연 아버지를 떠나 시집을 갈 것인가.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 쉰여섯 살의 아버지. 인생의 끝이라고? 결혼하라고 딸을 훈계하는 아버지는 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오해나 착각은 아닐까. 딸의 진심에 대한 착각과 오해, 또는 자기 진심에 대한 오해나 착각. 아니면 아집. 아무리 부정해도 결국 진심은 부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딸을 시집보내야 했지만, 뒤에 남은 쓸쓸함은 어쩔 수 없다는 것. 옷도 자기가 스스로 벗어서 걸어야 하고, 사과도 자기 손으로 스스로 깎아서 먹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그 한없는 서글픔. 그리고 잔잔한 파도.


CA454. 카터 스미스, 〈루인스〉(2008)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 젖어 있는 문화가 다르다는 것. 소통되지 않는다는 것. 오해와 불신. 금기. 종족 보호. 격리. 폐허. 원주민. 피라미드. 무덤. 구멍. 깊은 바닥으로 내려가기. 핸드폰 벨 소리를 만들어내 사람을 유혹하는 식물. 사지 절단. 말하는 식물. 꽃. 괴식물의 습격.


CA455. 폴 해기스, 〈엘라의 계곡〉(2007)

이라크. 군인 아들이 휴가 나갔다가 제때 귀가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의 심정. 아들의 행방이 묘연하다. 탈영인가?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 나선다. 당연하다. 이때 아버지는 걱정이 더 앞설까, 궁금증이 더 앞설까. 미국 중소도시의 외곽은 어째서 이토록 황량하게 보이는 것일까. 또는, 어째서 이토록 황량하게 찍을까. 아들이 비명횡사했다는 소식. 갈기갈기 찢긴 아들의 시체. 마흔두 군데의 자상(刺傷). 하나의 칼. 게다가 불에 태우기까지 했다. 이 끔찍한 아들의 시체 앞에 선 아버지, 토미 리 존스. 어머니 수잔 서랜든. 육군에서는 정기적으로 마약 검사를 하지만, 이라크에서는 아니다. 아들의 마약 복용 혐의. 샤를리즈 테론. 범죄현장을 훼손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무식해서, 또 하나는 은폐하려고. 아들의 시체를 태우는 냄새가 바비큐 냄새 같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게다가 아들의 시체가 짐승들한테 뜯어 먹혔다는 것. 아들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 어머니의 반응과 아버지의 반응. 아들의 시체를 목격한 어머니한테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고 말하는 사람은 분명 자식이 없으리라는 마땅한 추정. 위로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태에 대한 이해. 이라크는 엉망이다. 영웅조차 엉망으로 만들 만큼. 멕시칸 갱. 스페인어. 다윗은 검을 들고 달려드는 골리앗에게 돌덩이를 던졌다. 화살을 날린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당시 전쟁의 규칙인 ‘검 vs 검’의 원칙을 어긴 것은 아니다. 그러니 다윗은 정당하게 이긴 것이다. 어디서? 엘라의 계곡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아들에게 엄마가 일평생 하지 못한 것을 아버지는 단 한순간에 할 수도 있다는 것. 문을 열어놓고 자는 습관 따위는 단 한순간에 없앨 수 있다.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 남자와 남자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물론 스탭 바이 스탭이지만. 악몽. 잠들지 못하는 밤의 시작. 쫓는 쪽과 쫓기는 쪽, 어느 쪽이 더 필사적일까. 다리미 없이 옷을 다림질하는 방법, 문대기. 목을 매 죽은 시체의 모양새. 자살이 자백으로 읽힐 때. 의심과 확신. 체포와 처벌. 아버지는 알고 있다. 죽음 또는 살인 행위에 대하여 무감각해지는 것. 호송 차량은 도중에 멈추면 안 된다는 규칙. 전장의 규칙에는 어째서 예외가 있으면 안 되는가. 국기를 뒤집어 게양하기. FOR THE CHILDR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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