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95
CA471. 다카하시 이와오, 〈8월의 카리유시〉(2003)
7월도 9월도 아닌 8월. 이 한여름. 여름의 한가운데. 8월의 바다. 8월의 오키나와, 또는 오키나와의 8월. 죽은 엄마의 가족. 할머니와 이모, 그리고 이종사촌. 오빠와 여동생. 자막이 없으면 알아듣기 힘든 오키나와 사투리. 히루마시, 키지무나, 가주마루 나무에 깃든 정령이 활동하는 날. 조신하게 행동해야 하는 날. 지방 작은 마을의 금기. 히자, 야기, 산양. 통역이 필요한 소통. 다른 것들이 만나서 생기는 낯선 정서. 마레비토, 저승에서 온 정령 또는 신. 죽음과 삶 사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 신이 들린 소녀. 뱀에 물리는 것과 신이 들리는 것. 죽은 자의 정령을 볼 수 있는 눈. 이 상태가 자연스러운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 기묘한 가족. 오나리, 에케리. 오키나와. 자매신과 형제신. 마을의 수호자. 일곱 번째 하늘. 그것은 그저 하나의 상태인가, 아니면 병인가. 마레비토는 기술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것인가. 기록과 촬영. 눈과 렌즈. 마레비토와 마레니. 정령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 더운 지방 사람들이 즐겨 입는 남방. 정령과의 교감. 삼미선(三味線), 샤미센. 현의 수가 세 개인 까닭은? 전쟁의 환영. 폭격. 붉게 타오르기. 수박 서리. 나한테는 보이지만, 너한테는 안 보이는 것.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 통하느냐, 안 통하느냐. 촬영할 수 있는 것과 촬영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들리는 것이냐, 들어오는 것이냐. 막을 수 있는 것이냐, 막아서는 안 되는 것이냐. 카메라의 시점 쇼트와 정령의 시점 쇼트. 환영과 환상.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오래된 건물이 처음 지어지던 때의 풍경에 대한 궁금증.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내 눈에는 보인다는 것은 단순한 현상일까, 그 어떤 의미일까. 전쟁의 기억. 일본영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기묘하게 나른한 정서. 기억은 흉터의 다른 이름일까. 그러니 치유란 결국 기억으로부터의 해방인 셈. 그 기억이 더는 고통이 아닌 상태. 적어도 견딜 수 없는 정도의 고통은 아닌 상태.
CA472. 미즈타 노부오, 〈252 생존자 있음〉(2008)
지진과 기후의 상관관계. 전직(前職)에 대한 미련 또는 사명감. 자기한테 맞지 않는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 또는 그 처지. 지진의 전조. 우박.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지진에 대한 공포가 그들 유전자에 새겨놓은 것. 지진이 일으키는 해일. 〈해운대〉(2009, 윤제균)의 기억. 여진(餘震)은 왜 있는 걸까. 지진조차도 그냥 물러가기가 아쉬운 걸까. 태풍 8호 동경 직격. 지진과 해일과 태풍이 동시에 발생할 확률은? 252, SOS. 기호학적 동일성. 구조 요청 신호. 소리와 청각. 난데없이 한국인 여성은 왜 집어넣은 것일까. 도구의 활용. 살아남기 위한 방법, 또는 의지. 항응고제와 수혈. EDTA. 구조대의 안전과 인명구조의 상관관계. 어느 쪽이 더 상위의 개념일까. 가족이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구조대뿐이라는 엄연한 현실. 그러니 구조대는 어떻게든 액션을 취해야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한다는 것. 구하려는 의지와 구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하늘의 도움. 이 삼위일체. 형제 구조대 스토리.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직업이라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더는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구조하려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 구조의 윤리. 구조의 성공과 실패의 경계 지점에 대한 사유.
CA473. 니시카와 미와, 〈우리 의사 선생님〉(2009)
‘의사(醫師)’는 어째서 ‘사(師)’만으로는 부족해서 ‘선생님’이라는 호칭까지 붙여 부르는 것일까. 의사 앞에서는 누구나 작아지기 때문일까. 자기 목숨을 내놓는 기분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본능적인 경외감? 이것은 공포일까, 우려일까, 굴욕일까. 아니면 말 그대로 존경일까.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담겨 있는 책임감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의사다운 의사와 선생님다운 의사의 차이. 환자가 바라는 것은 어느 쪽일까. 의사다운 의사가 진짜 의사일까, 선생님다운 의사가 진짜일까. 그가 시골 의사로 살아가고자 마음먹은 순간. 그는 무엇에 자극받은 것일까. 제복일까, 시선일까. 면허를 소지하지 않은 사람이 버젓이 의사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환자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의술이 아닌 게 아닐까. 설사 의술이 부실하거나 부재하더라도 그것을 뛰어넘는 따뜻하고 세심한 마음의 헤아림이 있다면 별문제 없이 괜찮은 것이 아닐까. 이 경우 의사와 자원봉사자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일상의 차원에서 필요한 의술의 수준은 실은 별것 아닌 것이 아닐까. 병을 고치는 것은 어쩌면 본질과 상관없는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던 그가 다시 병상의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일까. 의사라는 겉껍질을 벗어던지고 무엇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CA474. 김유진, 〈신기전〉(2008)
국가와 국가 사이의 위계가 노골적으로 관철되던 시대. 신무기 개발의 필요성, 또는 이데올로기. 작은 나라와 큰 나라. 섬기는 나라와 섬김을 받는 나라. 피아 사이에 대등한 공존은 불가능한 것일까. 조공의 경제학과 정치학.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과학적 사고의 발전. 소신기전, 중신기전, 대신기전. 화약의 발명. 로켓의 원리. 운반수단. 정밀한 계산. 측정. 거듭되는 실험. 화살이냐, 미사일이냐. 감칠맛 나는 대사. 박력 있는 편집. 뚜렷한 주제 의식. 한눈팔지 않고 전진하는 스토리.
CA475. 다니엘 태플리츠, 〈모세가 된 사나이〉(1997)
신약의 팔복(八福)보다 구약의 십계명이 더 빈번하게 회자되는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도 세상은 여전히 신약보다는 구약의 세계에 더 가깝기 때문일까. 그래서 세상이 이토록 각박한 것일까. 미국에 토네이도가 자주 일어나는 까닭은? 일거에 파괴해야 할 필요성? 아내를 잃고, 집을 잃고, 직장을 잃는 사태. 실존 상실의 삼위일체. 그리고 벼락까지 맞는다. 하지만 목숨만은 건진다. 이건 뭘까. 어쩌자는 것일까. 아니, 어쩌라는 것일까. 삶의 형식과 운명. 성경을 들춰볼 때가 되었다는 것. 이런 경우 사람의 생각은 어째서 신약보다는 구약의 형식을 받아들이려 하는 것일까. 징벌과 은총. 징벌로 해석하려는 마음과 은총으로 해석하려는 마음. 이때 어느 쪽이 옳으냐는 별개의 문제다. 어느 쪽으로 마음이 기우느냐가 문제다. 예수님조차 충분히 벗겨내지 못한 구약의 세계관. 하나님에 대한 항의로서 십계명 어기기. 하지만, 이 자체가 신앙의 한 형태라는 것. 믿음이 없다면 저항도 없다. 하나님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저항. 인간은 과연 계명을 몇 개나 어길 수 있는가. 계명은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울까, 어기는 것이 더 어려울까. 다 지킬 수 없다면 다 어길 수도 없는 것 아닐까. 어떤 사건을 신의 섭리라고 받아들이는 태도와 그저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의 차이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그대로 신의 뜻이 된다. 눈동자 속에서 바다를 보는 또 다른 눈.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십계명은 금지 규정일까, 아니면, 권장 규정일까. 어째서 신은 ‘아무 때나’ 사람을 괴롭히는 걸까. 정신 나간 신. 신이 있다고 믿는 것과 신을 신뢰하는 것의 차이. 살인과 자살의 차이. 고래뱃속의 기적. 고래의 용도. 구원. 기적은 꼭 필요한 곳에 반드시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적의 정체에 대하여 지금껏 오해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