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58. 사랑에 관한 진지한 통찰

- 프랑수아즈 사강, 《패배의 신호》

by 김정수

B58. 사랑에 관한 진지한 통찰 / 《패배의 신호》 - 프랑수아즈 사강 소설 /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처음 사강의 책을 읽은 뒤로 참 오랜 세월이 흘렀네요.

다시 말하면, 그 오랜 세월 동안 사강을 읽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니, 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숫제 기억조차 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편이 맞겠네요.

그리고 마침내 《패배의 신호》를 만났습니다.

물론 제가 읽은 사강의 첫 작품은 《슬픔이여 안녕》이었지요. 그것 말고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비롯하여 그 당시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와 있던 사강의 다른 작품들도 거의 다 읽은 기억이 납니다.

좋았다거나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한 작가의 작품을 일단 시작하면 되도록 차례로 다 읽던 당시의 제 독서 패턴 탓이 더 크다고 해야 옳을 겁니다.

한데도 남아 있는 기억은 별로 없다고 고백해야겠습니다.

이청준을 포함하여 윌리엄 포크너, 헤르만 헤세, 알베르 카뮈,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무겁고 진지한 작품들에 빠져 있던 시기라서가 아니었을까, 짐작되기는 합니다.

예, 사강의 소설들은 죄다 한가로운 사랑 타령으로 느껴졌거든요. 적어도 그 시절의 저한테는요.

그 뒤로도 사강의 새로운 작품이 번역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더러더러 듣기는 했지만, 당연히 그 시절 이후로 사강의 작품은 제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지요.

온라인에서가 아니라, 지난봄 국내 한 여행지의 개인 서점에서 직접 육안으로 만난 것입니다.

오렌지빛 표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는 백수린 작가가 번역한 시몬 드 보부아르의 《둘도 없는 사이》의 붉은색 표지가 덜컥 눈에 들어온 경우와 아주 비슷했습니다.

전 시대의 어떤 수필가가 지금으로부터 55년 전(1970년)에 ‘책’이라는 제목으로 쓴 수필의 다음과 같은 첫 문장이 생각납니다.

‘책은 고와야 한다.’

꼭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우리 옛말이 아니더라도 표지가 예쁘게 디자인된 책이 독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겁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 책의 저자가 사강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한데, 정말로 ‘고와서’였을까요.

문득 사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였습니다. 사강의 작품인데도요. 그것도 고작 서른 살(1965)에 쓴 작품인데도 말입니다.

물론 이 작품 역시 ‘사랑’이 주제였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흘렀고, 저도 생각과 정서 상태가 많이 바뀐 탓인지, ‘한가로운 사랑 타령’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진흙 속에 파묻혔던 보석의 진가를 그제야 알아보았다고나 하면 될까요.

예, ‘진지하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사랑’에 관해서만큼은 그 통찰의 깊이와 핍진함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 겨우 서른 살에 사강은 벌써 그렇게까지 나아가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감탄스러웠습니다.

예, 근래에 드물게 순도 높은 ‘감탄’이라는 걸 하면서 읽었습니다.

매우 뒤늦은 ‘발견’이라고 하면 될까요.

그래도 더 늦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겠지요.

눈에 잘 띄는 곳에 이 책을 진열해 놓은 그 여행지의 작은 개인 서점 주인님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고작 봄, 여름, 가을, 이 세 계절에 걸친 사랑과 이별의 서사입니다.

가슴속 깊이 들어온 문장이 수도 없이 많지만, 다음의 한 문장으로 아쉬운 마무리를 하려 합니다.

모차르트의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을 좋아하는 주인공 루실이 애인 앙투안한테 둘의 실질적인 이별이 사실상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제가 생각하는 순간―에 하는 말입니다.

“어쩌면 우린 사람들이 타락했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일지도 몰라. 하지만 난 그렇지 않은 척할 때, 더 타락했다는 기분을 느껴.”

이 말에 앙투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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