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98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98

by 김정수

CA486. 질리언 암스트롱, 〈오스카와 루신다〉(1997)

랄프 파인스와 케이트 블란쳇, 그리고 제프리 러쉬의 내레이션. 기독교. 근본주의자. 원리주의자. 보수주의자. 교리를 빙자해 인간을 억압하는 자들. 영국 국교회. 성공회. 크리스마스 푸딩에 대한 금기. 이단들의 크리스마스. 신의 계시. 타락. 〈초콜렛〉(2000, 라세 할스트룀)의 그림자. 타락을 타락이라고 규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도박. 확률. 욕망. 믿음의 문제. 신의 섭리. 태어나는 순간 머리에 뒤집어쓰고 나온, 찢어지지 않고 온전히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대망막(大網膜)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절대 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는 미신.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나오는 저 행운의 상징. 그 미신을 신봉하는 성직자. 내기. 무엇을 건다는 것. 거기에서 신의 뜻을 엿보겠다는 태도. 성직자들도 최후의 순간에는 내기를 건다. 신의 뜻이냐, 인간의 뜻이냐. 남는 것은 해석의 문제. 경마와 카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로 만든 교회당. 목사가 자살을 선택하는 순간. 또는 자살을 선택한 목사. 택하기와 감행하기. 교회 건물을 통째 여기서 저기로 옮긴다는 발상. 문득, 헤어조그! 그것은 광기인가 신앙인가. 도박과 살인, 그리고 사랑. 물을 무서워하는 목사. 공수병?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침몰하는 교회. 그 기이한 몰락과 세례의 이미지. 사라져 버린 내기의 계약. 놓쳐버린 사랑. 영원한 이별. 참회는 누구의 몫이어야 하는가.


CA487. 에드워드 드미트릭, 〈젊은 사자들〉(1958)

말론 브란도, 딘 마틴, 몽고메리 클리프트, 리 반 클리프. 이 배우들을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솔저와 폴리스맨의 구분. 말론 브란도는 자신을 가리켜 군인이 아니라 경찰이라고 한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거부 또는 혼동. 이 고뇌가 군인의 것일 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읽는 몽고메리 클리프트. 브로드웨이 스타조차 피해 갈 수 없는 징집. 전장의 사랑. 점령지의 사랑. 후방의 사랑. 독일, 프랑스, 영국, 그리고 미국. 전쟁터로 떠나는 남자와 그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 금발의 말론 브란도. 독일식 억양을 흉내 내는 미국인. 정작 독일인들은 독일식 억양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8년의 기이한 풍경. 히틀러가 독일에 희망을 가져다주리라고 믿는 ‘선량한’ 독일인. 이것은 무지인가, 그저 순진함인가. 폭탄이 떨어져 터질 때마다 절묘하게 박자를 맞춰 좌우로 흔들리는, 아니, 경련하는 카메라. 이 효과가 생각보다 괜찮다. 단정한 필기체로 편지를 쓰던 시대. 흑인 가사 도우미의 시대. 총알은 피아(彼我)를 가릴 줄 모른다는 교훈. 전쟁이, 또는 전쟁 상황이 적어도 영화 속에서는 낭만적일 수 있었던 이상한 시절. 이것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또는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은 역시 베트남일까. 전쟁을 해야만 하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의 심리적 정황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전쟁이 가르쳐주는 것과 전쟁에서 배우는 것 사이의 차이. 그런데도 다시금 전쟁을 시작하는 까닭. 이에 대한 근본적인 통섭적 답변이 있을까. 어떤 유전자가 전쟁을 감행케 하는가.


CA488. 신연식, 〈페어 러브〉(2009)

페어 러브는 페어 트레이드와 어떻게 다른가. 공정 무역. 공정 연애. 공정한 사랑. 사랑을 공정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가. 그들의 사랑은 충분히 공정한가. 한데, 여기서 공정하다는 판단이나 감정은 관객의 몫이다. 그들의 사랑을 공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실은 그들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지 않을까. 적어도 그들을 온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 말고는. 하지만 그 사랑이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은 바로 그 주변 사람들한테서 시작된다. 그럴 수밖에. 그러니 어쩌면 적어도 사랑에서만큼은 공정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한없이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것이 어쨌거나 사랑이라는 것이기에. 그렇지 않다면 사랑을 하는데 이토록 괴로울 까닭이 없다. 아마도 이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은 50대의 시계 수리공이 아니라 배우 안성기인지도 모른다. 안성기라는 배우의 존재감과 매력이 모든 불공정함을 짓뭉개버리니까. 영화가 속절없이 드러내 보이는, 또는 숨기지 못하는 어떤 문제나 부실함도, 또는 어떤 독특함이나 특이함도, 또는 낯섦이나 이상함도 그 사랑의 대상이, 또는 그 사랑의 주체가 안성기라면, 또는 안성기이기에 받아들일 수 있다고, 또는 용서가 된다고 말하는 데 크게 거리낌이 없는 이 기이한 심리상태.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은 ‘안성기를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선택하는 데 오래 망설일 필요가 없으리라는 것. 한데, 안성기는 과연 어느 나이까지 이런 인물을 연기할 수 있을까. 아니, 어느 나이까지 이런 인물을 연기해도 어색하지 않게, 또는 안쓰럽지 않게 보일 수 있을까. 이것은 한국영화의 어떤 바로미터는 아닐까. 영화가 끝나고 나면 환청처럼, 이명처럼 계속 들려오는 문 두드리는 소리.


CA489. 오오모리 가즈키, 〈고질라 18: 고질라 대 비올란테〉(1989)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한 나라의 군대가 다른 나라에 주둔한다는 것. 괴물과 자국 군대가 아닌 미군이 어떻게든 관계를 맺는다는 것. 유전공학. 화산의 분화구. 뜨거운 용암. 바다. 언제까지나 시들지 않는 식물. 식량 전쟁. 미국의 영향권을 벗어나려는 욕망. 초능력. 식물과 대화하는 능력. 말하는 장미와 말하지 않는 장미. 목소리가 있는 식물과 목소리가 없는 식물. 같은 꿈. 고질라, 또는 고지라가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조직이나 기관의 존재. 세금. 박테리아로 모든 환경 문제를 해결한다는 발상. 최종병기라는 개념. 고질라의 새로운 쓰임새. 세계 질서의 파괴 또는 재편. 국가와 정부는 어떻게 다른가. 정부와 국가는 과연 운명공동체인가. 과학의 발달에 대한 공포. 더 정확히 말하면 과학의 발달이 만들어내는 괴물에 대한 공포. 그 한 결과인 고질라. 항핵(抗核) 또는 식핵(食核) 박테리아. 과학은 정치의 도구인가, 또는 정치의 도구여도 되는가. 세포에 마음이 깃들어 있고, 그것이 여기서 저기로, 또는 저기서 여기로 옮아가고 옮아올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식물에 인간의 마음이 깃들일 수 있다는 것. 거대식물감시본부. 고질라를 ‘느끼는’ 소녀. 고질라는 저체온인가. 첨단과학이 표출되는 통로로서 고질라라는 존재의 가치. 식물에서 동물로 진화하는 비올란테. 괴물과 그 괴물을 있게 한 인간. 어느 쪽이 더 괴물인가. 에덴동산 이후, 바벨탑 이후, 이것이 신의 자리인지 인간의 자리인지가 늘 헷갈린다는 것.


CA490. 데즈카 마사아키, 〈고질라 X 메카 고질라〉(2002)

거대 로봇이나 괴수가 나오는 영화에서 경찰이나 군대는 어째서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여전히 총과 대포를 쏘고 미사일을 날리는 것일까. 재래식 무기가 쓸모없는 형국. 심지어 핵폭탄조차도. 고질라가 나타난 상황과 지진의 상황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 무엇보다도 감당할 수 없는 크기라는 것. 속수무책의 재난. 전형적인 난민의 모습. 고질라는 불사신인가. 이는 과학 차원의 문제인가, 아니면 영화 차원의 문제인가. ‘대일본인’과 고질라의 관계. 불을 불로 끄는 것처럼 고질라를 고질라로 제압한다는 발상. 생명공학이냐, 기계공학이냐. 과학기술의 발전을 선도하는 고질라의 이상한 역할. 통제되지 않는 생명공학, 통제되는 기계공학. 싱크의 문제. 장차 뉴욕 양키스로 갈 운명인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마츠이. 천하무적 고질라. 고질라를 처치하려면 먼저 고질라의 입을 다물게 하라. 고질라는 죽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물러날 뿐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온다. 그러면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때를 위하여 인간은 더 열심히 연구한다. 거대 로봇 스토리에 안착? 아니면, 그것의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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