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99
CA491. 올리버 파커, 〈도리안 그레이〉(2009)
비 직계가족에 대한 유산상속. 흔히 영미 문학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일. 귀족과 평민. 어째서 계급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일까. 아니, 생겨야만 하는 것일까. 피아노. 담배. 가스등. 깨진 거울. 더 많이 쳐다볼수록 더 많이 볼 수 있다. 영국에서 바꾸고 싶은 것은 날씬 뿐이다. 즐기는 것을 창피해할 필요는 없다.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영혼의 대가도 아낌없이 치르고, 그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태도. 초상은 영원하고, 도리언 그레이는 죽는다. 어떤 모습으로 남는가. 사진과 그림이 공존하기 시작하던 때. 젊음과 아름다움, 지극히 한시적인. 도리언 그레이는 어떻게 변해가는가. 이것은 타락인가, 추락인가, 전락인가. 문명은 쾌락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그 유혹을 받아들이면 된다? 금지와 충동. 접촉이 빚어내는 변화. 감염과의 유사성. 초상화의 시점 쇼트. 내가 내 초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초상화가 나를 본다는 것. 눈길의 일직선 교차. 상처의 이동. 상처를 가져가는 초상화. 그래서 나는 다치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다. 나는 멈추어 있다. 슬픔의 이동. 영혼의 이동. 나는 저지르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내가 그려진 그림의 몫이라면? 죄는 내가 짓고, 그 죄의 대가는 내 초상화가 치른다면? 그래서 초상화가 날이 갈수록 망가진다면? 정말로 파괴되는 것은 그림인가, 내 영혼인가. 자신이 저지른 죄악상이 그림에 고스란히 나타나, 그것을 목격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어느 쪽을 없애야 할까. 악마는 나일까, 그림일까. 치료해야 하는 것은 나일까, 그림일까.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 차이나타운의 아편굴. 전가하지 않고는 유지할 수 없다는 것. 일종의 희생. 프란츠 리스트를 닮은 도리안 그레이. 하지만 기억은 끝까지 남는다는 것. 그 기억이 그 기억의 주인을 괴롭힌다는 것. 그는 어째서 끝내지 못하는 걸까. 자기 파멸을 시각으로 확인한다는 것. 런던의 지하철. 산업혁명기. 도시빈민의 양산. 여성참정권이라는 문제.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변한 것을 변하지 않았다고 보는 쪽과, 변하지 않은 것을 변했다고 보는 쪽. 그 양쪽은 서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 옛 귀족의 몰락은 새 귀족의 등장을 뜻하는가? 미국. 떠날 곳이 있었다는 것. 전쟁. 자멸, 곧 끝내는 방법. 도리안 그레이는 어째서 끝내 미국으로 떠나지 못했을까. 그 떠나지 못함의 의미는?
CA492. 김한민, 〈최종병기 활〉(2011)
전쟁이 공적인 일에서 사적인 일로 전환되는, 또는 교란되는 지점. 전쟁의 비극을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이 사적 감정에 바탕을 둔 사태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유감스럽지만 속절없는 노릇이다. 전쟁 또한 감정을 지닌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여기서도 결국 문제는 가차 없이 공사 구분의 실패에 놓인다. 이 실패로 말미암아 협정이나 인도주의가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전쟁은 갈데없는 절대 악이다. 배경이 병자호란이라고 다를 바는 아무것도 없다. 죄종적인 병기가 핵폭탄이 아니라 활이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CA493. 오렌 펠리,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는 것. 모든 사태는 우선 정체불명의 상태에서 시작된다. 저들은 어째서 귀신과 대화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궁금해하기만 하는 걸까. 그래서 이것저것 알아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그것은 대화하려는 노력과 다르다. 그러니 그 결과가 같을 턱이 없다. 그들이 촬영을 한다는 것. 기록을 한다는 것. 하지만 그것의 의미를 따져 묻지는 않는다는 것. 분석은 하되 해석은 하지 않는다. 한데, 귀신한테 메시지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그것은 의도가 있는 수작일까. 그것은 해석할 수 있는 메시지일까. 보통 귀신이 해코지한다고 말할 때 그것이 해코지인 것은 해석의 부재 때문일까, 해석의 거부 때문일까. 아니면 해석에 대한 무지나 무신경 때문일까. 귀신이 ‘들린다’는 것. 그 상태가 편안해진다는 것. 적응된다는 것. 몽유병. 귀신이 자기 뜻을 관철하는 방법. 한데, 그것은 어째서 꼭 자멸의 모양새를 갖추어야 하는 걸까. 그게 귀신의 취향일까.
CA494. 알프레드 히치콕, 〈다이얼 M을 돌려라〉(1954)
이 영화를 오리지널 3D로 볼 수 있다면! 대사의 힘. 동작의 매혹. 계획을 세우는 것과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과정의 서스펜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현상의 긴장.
CA495. 진덕삼, 〈8인: 최후의 결사단〉(2009)
1905년 또는 1906년의 홍콩. 중국의 또는 중국영화 속의 둥근 식탁,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국권 침탈의 상태 또는 혁명이 필요한 상태. 손문 또는 쑨원, 그리고 중산(中山) 또는 일선(逸仙). 보디가드와 어쌔신의 대결. 암살과 보호. 결사대. 청 또는 중국. 어떤 중국이어야 하는가의 문제. 또는, 서구 문물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 또는, 받아들이되 어떤 모양새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 이 문제를 놓고 어째서 민족이 갈라져야만 하는가. 인간은 한 가지 문제를 놓고 어째서 뜻을 달리하는 것일까.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에서는 머잖아 이것을 과학의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 결국이 몹시 궁금하다. 먹고사는 문제와 자기가 맡은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문제가 서로 얽혀 있는 모양새. 나라에 충성한다, 또는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고 할 때 그 나라는 어떤 나라를 뜻하는가. 의술과 혁명, 소수의 사람을 구하는 방법과 다수의 사람을 구하는 방법.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학대받는 것과 천대받는 것의 차이. 어느 쪽이 더 견디기 힘들까. 뒤를 이은 여러 차례의 봉기와 신해혁명. 희생의 대가. 삼민주의.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 역사와 허구를 뒤섞는 것. 그랬으리라는 가정 또는 추정. 역사의 현장이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무대가 될 때.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그 희생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동기의 다양함. 그 개별성. 그런데도 어째서 그 희생의 결과는 한결같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