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100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00

by 김정수

CA496. 스즈키 마사유키, 〈히어로〉(2007)

노랑머리의 젊은 꽃미남 검사. 이 비현실적인 설정이 상큼하다. 일종의 법정 영화. 한데, 어째서 한국 배경의 시퀀스가 필요했을까. 또, 기무라 타쿠야는 부산의 한 식당에서 주문한 청국장을 정말 먹었을까. 영화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까닭은? 어째서 기무라 타쿠야는 하고많은 음식 가운데서 굳이 청국장을 시킨 것일까. 범인이 누구인지는 분명한데, 그가 범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나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 아니, 그 근거나 증거에 대한 강력한 반박이 존재한다는 것.


CA497. 최호, 〈고고70〉(2008)

만일 그 시대에 계엄령도 없었고, 통행금지도 없었고, 복장이나 두발에 대한 단속도 없었더라면 대중음악은 어떤 식으로, 어느 만큼 자기 영역을 구축(構築)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여전히 시대에 저항하는 방식이었을까. 시대에 부대끼지 않았다면 음악은 지금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을까. 고고의 탄생. 새로운 노래와 춤판의 형성. 상륙이라기보다는 자생이라고나 해야 할 소울의 등장. 빨갱이 남편 잘못 만나 고생만 하다 간 우리 엄마. 유구한 가족사. 닐바나. 고고클럽의 융성. 퇴폐풍조.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 문화와 풍조의 경계선. 문화가 풍조로 새겨지는 순간. 장발이 보기에도 좋지 않고, 위생에도 좋지 않다는 시각. 그래서 그만두어야 한다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들은 그 모든 것들을 허용할 경우 도대체 무엇이 망가진다고 여기는 것일까. 대왕 코너, 대화재. 청량리가 그런 ‘풍조’의 중심지였을 때. 역사적인 현장의 느닷없는 틈입이 불러일으키는 생경함. 소격효과. 끝내야 할 때가 온다는 것. 왜냐하면 시작이 있었으므로. 문제는 무엇과 함께 끝이 나느냐는 것. 시대와 함께. 또는, 심판과 함께. 또는, 심판으로 새길 수 있는 어떤 사건과 함께. 그때쯤에는 그렇게 새기고 싶은 마음이 된다는 것. 고고 금지령. 희생양. 병역 거부가 아니라, 기피일 수밖에 없었던 시절. 좋았던 시절. 어째서 좋은 시절은 항상 과거일까. 베트남 패망과 긴급조치 9호.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억압당하는 상태와 놀고 싶은 욕망의 충돌. 시대의 화석. 벽화. 기록. 화두.


CA498. 미키 사토시,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2005)

빨대로 간 만들기. 우에노 주리가 화면에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가벼움. 깃털 같은. 이 느낌이 좋다. 두부와 모나카. 물을 매개로 한 상극. 거북이가 물에 빠질 때와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질 때. 쿠자쿠와 스즈메, 공작과 참새. 책가방에 스티커 붙이는 센스와 인생의 센스를 서로 동격이라고 간주하는 여자. 센스로 안 된다면 돈으로 하자. 북풍(北風) 소리가 나는 선풍기. 하루하루를 강렬하게 사는 친구. 만화스러운 발상이 영화 속으로 들어올 때와 소설 속으로 들어올 때의 차이. 어중간한 취향이라는 것. 스파이의 자격은 평범함에 있다는 것. 지나친 평범함은 비범함이다. 평범하기에 평범하게 사는 것과 평범해야 하기에 평범하게 사는 것 사이의 차이.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삶의 모든 평범함이 더는 평범함일 수 없게 된다는 것. 이 이상하리만치 손쉬운 평행이동. 아오이 유우의 비범함과 우에노 주리의 평범함. 이 괴상한 대비. 오후 3시의 슈퍼에서 주부가 무엇을 사면 가장 평범할까. 평범하게 사는 것이 피곤해지는 순간. 타고난 자기 운을 하나도 쓰지 않은 것 같은 얼굴이라는 것. 평범한 일상의 뒷면에 도사리고 있는 비범함. 한데, 비범함과 뛰어남은 동의어인가. 첫사랑의 환상이 깨어질 때. 또는 환상이 깨어진 첫사랑과 재회하기. 그 난감함. 평범한 인생과 시시한 인생의 다름. 너무 비범하게 살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것. 멀리서 찾아온 딸한테 스모나 한 판 하자는 아버지. 그에 응해주는 딸. 아오이 유우의 마음을 흔든 쇼팽의 이별곡. 인생은 생각나지 않는 게 늘어나는 과정인지도. 마침내 파리에 억류된 아오이 유우를 구하러 떠나는 우에노 주리.


CA499. 바딤 페렐만, 〈인블룸〉(2008)

학교가 총기 난사의 현장이 되었을 때. 총기 난사에 이르기까지와 총기 난사 이후, 어느 쪽이 더 심각한 문제적 상황일까. 15년은 어느 정도로 충분한 기간인가. 상처는 상처대로 남아 있고, 이쪽에서든 저쪽에서든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 그 남자아이는 어째서 그 여자아이를 쏘지 않았을까. 이 질긴 궁금증. 영화 속에 나오는 총격전이 재미있게 즐겨도 되는 장면이 아님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한테 어떻게 가르쳐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 거칠 게 없었던 제멋대로의 불량소녀가 겁 많고 조심스러운 모범 어른이 되는 데 총기 난사 같은 끔찍한 경험이 반드시 필요한 걸까. 죽음의 선택 또는 삶의 선택. 그것은 선택이었을까, 희생이었을까. 〈소피의 선택〉(1982, 알란 J. 파큘라)에서 메릴 스트립이 두 아이 가운데 한 아이를 선택해야만 했던 상황. 삶이 자격의 문제가 될 때. 심장은 정말 가장 강한 근육일까. 그래서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을까. 인과응보의 가혹함. 또는 ‘그것’을 인과응보로 해석하려는 본능의 강렬함. 이것은 그저 후유증인가, 아니면 징벌인가. ‘킬 미’와 ‘슛 미’의 차이. 친구를 위해서, 또는 자신의 양심을 위해서 ‘슛 미’라고 말하는 것. 반전 이전과 반전 이후. 현재가 실은 미래이며, 그 미래의 어떠함을 견딜 수 없으리라고 판단한 다이애나의 결단은 앞지른 속죄의 의식일까. 이 속죄는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닐까. 살아남은 친구는 무엇을 견디며 살아가야 할까. 그쪽이 정말 자신을 더 가볍게 하는 선택일 수 있을까. 다이애나는 어째서 자신의 미래를 그런 모습으로 상상했을까. 너무 짧은 순간이라서 그 리얼리티를 검토할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잠재의식이 발현된 탓일까. 그 소년은 어째서 둘 가운데 하나만 죽이고, 하나는 살려두려고 마음먹고 있었으며, 또, 그 선택을 끝내 실천한 것일까. 소년은 어째서 그 화장실을 마지막 장소로 선택했을까. 어쩌면 다이애나의 선택이 소년의 선택에 영향을 끼친 것일까.


CA500. 장훈, 〈의형제〉(2010)

삶의 터전과 수단을 모두 잃은 사람들의 처지는 다 마찬가지라는 것. 버림받은 공작원과 정리해고를 당한 기관원, 그리고 이주노동자. 이 오갈 데 없는 딱한 처지의 인간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어쩔 수 없는 연대 의식.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을 한 테두리로 묶을 수 있는 가장 밑바탕의 기준은 국가도 직업도 성별도 인종도 아닌, 역시 삶의 처지라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것을 어떤 희망으로 새겨도 될까. 스쿠터를 타고 내부순환도로로 달아나는 ‘그림자’를 송강호가 쫓을 때 그는 어째서 민간인의 차를 빼앗아 타지 않고 애처롭게 헐떡이며 그냥 포기하고 말았을까. 스토리 상의 필요성 말고 무엇이 그런 장면을 허락한 것일까. 강동원이 버림받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능력의 부족과 신뢰의 상실은 어느 쪽이 더 심각한 결격사유일까. 이 영화의 엔딩은 정말 해피엔딩일까. 굳이 시비를 걸 필요가 없는 걸까. 살이의 형편이 나아지는 것으로 사람은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 행복은 진짜일까. 한데, 어째서 6년일까. 송강호의 지방(紙榜) 쓰는 솜씨는 어디에서, 어떤 문화적 바탕에서 온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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