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123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23

by 김정수

CA611. 가이 리치, 〈스내치〉(2000)

무려 84캐럿짜리 다이아몬드의 행방은 강아지의 뱃속이었다. 따라서 그것의 최종 소유주가 누가 되는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현란한 좌충우돌의 소용돌이를 편력하는가, 하는 무용담만이 관객의 관심사가 될 뿐이다. 타란티노가 90년대 벽두에 영화계에 뿌려놓은 씨앗의 ‘폐해’가 이토록 세기를 넘기면서까지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는 현장을 우리는 목도하는 셈이다. 물론 여기에도 당연히 시효는 있다.


CA612. 한형모, 〈자유부인〉(1956)

‘아줌마’들이 중국집에 한복을 입고 가서 짜장면을 시켜 먹는 시대.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따라서 그 여자가 제아무리 당시로서 ‘불온한’ 행태를 보인다 한들 그것은 한갓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그 여자는 결코, 이미, 여전히 자유하지 않다.


CA613. 유현목, 〈그대와 영원히〉(1958)

이 영화의 강점은 감정의 절제다. 영화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정서의 흐름이 거듭 신파로 흐르려는 것을 감독은 ‘어쨌거나’ 가까스로 억제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여기에서 빚어지는 기묘한 부조화의 느낌이 오히려 이 영화가 지닌 정서의 밀도를 높이는 구실을 하는 듯 보이는 것이 과연 행운 또는 우연만의 결과일까.


CA614. 배창호, 〈황진이〉(1986)

이 영화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갓 롱테이크가 아니라, 배창호 감독의 인생관이 ‘너무’ 이르게 달관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점이 아닐까. 달관을 표현하기에 황진이는 지나치게 ‘젊은’ 정신 또는 영혼의 표상 아닐까.


CA615. 하라다 마사토, 〈쥬바쿠〉(1999)

영화의 결론은 그가 검은 세력의 마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경고성 통찰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검은 세력도 그와 같이 정의롭고, 정직하고, 신용을 중시하는 족속들의 눈총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대한 역설적인 통찰이기도 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감독의 전작 〈바운스〉(1997)와 〈가미가제 택시〉(1995)의 사회비판적인 시각의 연장선 위에 놓인 것이며, 나아가 감독이 여기에서는 뭔가 긍정의 요소를 찾기 위해 상당히 많이 애를 쓰고 있는 듯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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