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25
CA621. 스티븐 달드리, 〈빌리 엘리어트〉(2000)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부정(不正)을 저질러서라도 자식의 재능을 꽃피워주고 싶어 한다. 아니, 그러지 못하는 것을 심지어 죄악으로 여긴다. 이 죄악은 자기 파괴적 속성을 지닌다. 그러니 다른 어떤 욕망보다도 자식의 재능을 키우려는 부모의 욕망만은 국가가 앞장서서 충족시켜 줄 필요가 있다. 문제는 재능에 대한 정확한 판별이다. 가짜 재능을 키우려는 부모의 욕망마저 충족시켜 줄 의무는 없을 것이다. 가짜 재능을 키우려는 부모의 욕망은 거꾸로 그 가짜 재능의 소유자인 아이의 영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아, 이 형용 모순의 난맥상!
CA622. 미구엘 바르뎀, 〈어글리 우먼〉(1999)
인간이 어둠 속에서 살지 않는 한 외모는 전부다.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은 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눈의 기능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위선이다. 하지만 눈의 기능을 포기한 채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누구든 제 눈으로 사물을 보는 순간 그는 시각의 농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만일 그가 자신의 자유로움을 증명하고 싶다면 그는 ‘어글리 우먼’과 결혼해야 한다. 하지만 그 누가 ‘프리티 우먼’이 아닌 ‘어글리 우먼’과 결혼하고 싶어 할까. 문제는 외모가 전부라면 철저하게 외모가 기준으로 작용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되어먹지를 않았다.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다양한 층위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진정한 본질은 아니다. 외모 자체가 외모 이외의 덕목까지도 규정하는 것이 진짜 문제다.
CA623. 로우 예(로예), 〈수쥬/쑤저우강(蘇州河, Suzhou River)〉(2000)
멜로드라마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 인간은 어디에 살고 있건 다 똑같다는 것. 이상적인 인물들의 사랑과 현실적인 인물들의 사랑. 그 엇갈림과 겹침의 미학, 또는 비극. 아니면, 그 모두에게 무차별적으로 수용되거나 파탄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 또는 정서 상태의 운명적인, 또는 필연적인 난맥상.
CA624. 랄프 넬슨, 〈들판의 백합〉(1963)
웨스턴(서부영화)의 구조에 종교를 대입시키면 얼마나 유머러스해질 수 있는가를 실험해 본 영화. 그리고 당연히 시드니 포이티어!
CA625. 오시이 마모루, 〈아바론〉(2001)
가상공간은 문자 그대로 ‘가상’의 공간이다. 더도 덜도 아닌. 그러니까 ‘진상’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한 인식을 무화시키려는, 또는 무시하려는 시도의 근저에 다름 아닌 자본주의가 놓여 있다는 무서운 통찰, 또는 그 통찰의 무서움. “인간들이여, 깨어나라!”라는 선언, 또는 독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