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27
CA631. 웨인 왕, 〈차이니즈 박스〉(1997)
남자는 스스로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 그 마지막 순간을 캠코더에 담는다. 여자는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읽고 시장(市場)의 갈라놓은 생선의 몸속 작은 심장이 뛰는 모습을 본다. 그것을 사라지는 홍콩의 희망에 대한 상징으로 읽어야 할까. 어떻든, 누군가의 또는 무엇의 최후는 언제나 예사롭게 읽히지 않는 측면을 지니는 법이다.
CA632. 폴 슈레이더, 〈아메리칸 지골로)(1980)
〈귀여운 여인〉(1990, 게리 마샬)에 앞서 ‘귀여운 남자’가 있었다? 일종의 남성판? 영화가 지나치게 무거운 느낌인 것은 결국 그 탓일까. 어째서? 프로페셔널 ‘제비족’ 리처드 기어는 ‘주제넘게’ 진짜 사랑을 시작하려다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하지만 이는 오로지 게임의 규칙을 어긴 대가에 지나지 않는다. 팜므파탈은 제비족마저 파멸시킨다. 상대가 ‘옴므(남성)’이기만 하다면. 규칙을 어겼다는 사실 자체가 벌써 무한한 약점이다. 따라서 무서운 것은 팜므파탈이 아니라 게임의 규칙이다.
CA633. 마크 딘달, 〈쿠스코? 쿠스코!〉(2000)
뮤지컬이 아닌(!) 애니메이션의 한 가능성을 보여준 디즈니의 시도. 모든 폭군은 무식하다. 또는 무식하기에 폭군일 수 있다. 이 무식은 인간에 대한 몰이해와 관계되어 있다. 따라서 폭군에게 이런 무지를 깨우칠 계기가 어떤 식으로든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백성들은 끊임없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며 유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는 이 무거운 주제를 발랄한 감성으로 소화해 낸다. 왜? 어쨌거나 애니메이션이니까. 다른 답이 있을까.
CA634. 피터 버그, 〈베리 배드 씽〉(1998)
그것은 우연한 살인이었다. 하지만 모든 우연의 이면에는 필연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법이다. 살인에 관계된, 또는 연루된 등장인물들의 몸부림이 한없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것은 그들이 이 메커니즘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듯이 보이는) 탓이다.
CA635. 문성욱, 〈댄스 댄스〉(1999)
그들은 춤을 추기에는 너무 ‘늙어’ 보인다. 또는 ‘힘에 부쳐’ 보인다. 이것이 문제다. 그래서 춤의 문화적 코드가 넉넉히 살아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