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28
CA636. 신상옥, 〈여자의 일생〉(1968)
소설 《여자의 일생》(기 드 모파상)의 번안 또는 각색.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 바꾸기의 의미나 결이 썩 잘 살아난 느낌은 아니다. 외려 1930년대 우리 문학 특유의 느낌이 더 오롯하다. 그렇다면 그 바꾸기가 ‘썩’ 잘 되었다고 평가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CA637. 오즈 야스지로, 〈꽁치의 맛〉(1962)
오즈의 마지막 영화. 영어 제목은 ‘An Autumn Afternoon(어느 가을날의 오후)’이다. 그리고 홀아버지가 외동딸 시집보내는 이야기다. 오즈가 일찍이 〈만춘〉(1949)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오즈. 문제는 이 영화가 지금까지의 오즈 야스지로 영화와는 상당히 다른 요소들을 적잖이 간직하고 있다는 데 있다. 마지막 대목에 삽입된 계단 장면이 그 하나고, 마침내 어린아이(손자)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둘이다. 그리고 연륜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은 힘 있는 유머. 어쩌면 이 작품은 오즈 영화의 새로운 분수령이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오즈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더라면.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어느 지점에서 끝을 내야, 또는, 끝이 나야 한다. 〈동경이야기〉(1953)와 더불어 오즈 영화 또 하나의 최고 정점인 〈만춘〉의 테마로 다시 돌아온 오즈. ‘원점’ 회귀. 존재와 ‘무’. 그러니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유일한 글자 ‘無’는 그의 인생 전체에 대한 참 적확한 명명이 아닐까.
CA638. 후루하타 야스오, 〈무사〉(1989)
서부영화와 전쟁영화와 사지 절단의 호러영화를 비롯한 온갖 장르영화들의 잡종교배. 그런데도 배우들의 연기는 너무나 진지하여 그게 오히려 거꾸로 폭소를 자아낸다. 이 폭소에 대해서 어떤 논평을 내려야 할까. 불가사의의 느낌? 이 느낌이 신기하다.
CA639. 이노우에 가즈오, 〈오즈의 초상: 살아보기는 했지만〉(1983)
다큐멘터리. 그가 술을 자제했더라면 조금은 더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또, 그랬더라면 경부악성종양의 고통은 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병상에 눕기 직전까지 술을 가까이했다. 요컨대 술이 없었더라면 그의 예술 또한 없었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운명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바로 그 운명의 궤적을 유머러스하게 훑는다. 하지만 수많은 인터뷰 상대한테서 우러나오는 것은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존경심이다. 그와 함께 그들의 삶도 ‘총체적으로’ 일단락되었기 때문이다.
CA640. 오즈 야스지로, 〈부초(浮草)〉(1959)
그 남자의 인생은 문자 그대로 ‘부초’ 같다.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떠돈다. 하여 그는 이번에도 기어코 다시 떠나가야만 한다. 설사 그것이 언제가 실현될지도 모르는 돌아옴을 전제로 한 것이라 할지라도. 구도는 아름다워도 색채는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 기이함. 아무리 해도 끝내 친숙해지지는 않는, 저 일본영화 특유의 원색적인 색채감이 빚어내는 거북함. 역시 과도함이 원인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