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31
CA651. 오즈 야스지로, 〈바람 속의 암탉〉(1948)
남편은 깊은 고뇌 끝에 아내의 부정을 용서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과연 잊을 수도 있을까. 이것이 문제다. 영화가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의 어려움 때문이다. 여기에 대답한다는 것은 그 대답을 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모두를 괴롭힐 것이 거의 확실하지 않은가. 이 영화와 〈애수〉(1940, 머빈 르로이)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이 장면, 아내를 계단에서 밀어 떨어뜨린 남편이 그 아내한테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방으로 도로 돌아가 등을 보이고 털썩 앉아버릴 때, 그러고 있는 그 남편의 내면 풍경, 또는 그 내면 풍경이 말하고 있는 것.
CA652. 오즈 야스지로, 〈태어나기는 했지만〉(1932)
시트콤의 분위기에 젖어 있다고 해서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비극이라는 사실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은 ‘태어나기는 했지만’ 대단히 힘겹고 구질구질한 삶을 살아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요시이가의 두 아들은 요시이가의 직장 상사인 이와사키의 아들과 사회적 신분으로서 그 계급이 다르다는 것이 핵심이다.
CA653. 남기웅,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2000)
원조교제 내지는 강간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왜 〈레옹〉(1994, 뤽 베송)이나 〈로보캅〉(1987, 폴 버호벤)의 인용인지? 물론 ‘인조인간 009’의 인용도 있다. 그 여고생이 아직 대학로에 있다? 그러니 조심하라? 이것은 누구를 향한 경고 또는 협박일까.
CA654. 미야자키 하야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이 가냘프기만 한 소녀가 동족을 구하고자 위험천만한 곡예를 해야만 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비극이다. 이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지구의 환경을 깨끗하게 지키는 수밖에 없다. 이 메시지가 서슬 푸르다.
CA655. 조지 아미티지, 〈동창회 대소동(Grosse Point Blank)〉(1997)
청부살인업자 또는 살인청부업자, 곧 킬러도 ‘직업’일 수 있을까. 그래서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점은 바로 이 킬러를 엄연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데 아무런 회의도 의심도 고뇌도 하지 않는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사실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