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36
CA676. 델버트 맨, 〈세퍼레이트 테이블〉(1958)
빛을 싫어하는 사람은 진실도 싫어한다. 그런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일 때는 서로를 망치고, 혼자 있을 때는 스스로를 망친다. 바로 이 망치기의 연쇄 고리를 더 늦기 전에 끊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결정적인 파국을 피하거나 면하고 싶다면 마땅히!
CA677. 오키우라 히로유키, 〈인랑(人狼)〉(1999)
일종의 대체 역사물. 복거일의 장편소설 《비명을 찾아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설정. 문제는 이것이 애니메이션이라는 것. 애니메이션으로 이런 식의 서사구조를 형상화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에 해당하는 장점이 아닌지. 거대한 음모의 그늘 아래 농락당하는 인간군상이라는 주제는 따라서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CA678. 피터 그리너웨이, 〈필로우 북〉(1996)
인간의 육체가 책이 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토록 기괴하고도 엽기적인 설정과 형식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한갓 강탈당한 사랑에 대한 즉물적인 복수극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피터 그리너웨이는 천재지만, 어쩐지 사이비 천재가 아닌가 싶기도. 곧, 절반쯤은 사기꾼에 가깝지 않은가 싶은 느낌. 하지만 예술이란 바로 그런 ‘사기꾼’들의 존재가치를 인정해 주는 유일한 ‘우주’라는 것도 사실 아닐까. 누구한테나 살아남을 권리는 있는 법이니까.
CA679. M. 나이트 샤말란, 〈언브레이커블〉(2000)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불가해 앞에서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하나는 자살이고, 다른 하나는 복수다. 문제는 복수의 모양새다. 이 영화는 그 복수의 모양새로 대규모 학살을 제시한다. 이 전대미문의 규모가 어떠한 육체의 충격이나 위해에서도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남는 초인간이라는 비현실적인 인물의 설정을 요구한 셈이다. 하지만 대규모 학살이라는 형태의 복수극이 단순한 한풀이를 넘어서는 명백한 인생론의 목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도 자신의 삶을 긍정하기 위한, 아주 절박한. 이것은 분명 ‘쉬운’ 트릭이지만, 동시에 놀라울 만큼 종교적인 결말이기도 하다.
CA680. 조 샤르바니치, 〈왓쳐〉(2000)
연쇄 살인의 기저에는 어쩌면 동성애에 대한 욕구불만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살인범이 전직 FBI 요원을 상대로 벌이는 줄기찬 살인 행각은 아무리 양보해도 단순한 편집증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살인의 주체는 남자고, 살인의 대상은 불특정 다수의 젊은 여자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