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138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38

by 김정수

CA686. 곽지균, 〈청춘〉(2000)

1970년대의 정서를 테크노 세대에 속하는 캐릭터에 담아놓으려는 다소 ‘무모한’ 시도가 이 영화의 호소력을 현저히 떨어뜨린 원인이 아닌지.


CA687. 윤태용, 〈배니싱 트윈〉(2000)

‘배니싱 트윈(Vanishing Twin)’이란 ‘쌍태(雙胎)’ 가운데 한쪽이 임신 상태의 뱃속에서 모체 속에 흡수됨으로써 사라지는 현상을 일컫는 의학 용어라는데, 문제는 살아남은 한쪽이 다른 한쪽의 사라짐에 대한 기억을 잠재의식 속에 지니고 있어서 그것이 나중에 정신에, 마음에, 심리에, 정서에 모종의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 살아남은 한쪽은 사라진 다른 한쪽이 아름답고 편안한 고향으로 갔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평생 그 고향에 대한 까닭 모를 지향 속에 살아가게 된다는 것. 그래서 현실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 이는 스스로를 그 고향에 속하지 못하고 잘못 태어난 이방인으로 여기는 탓이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사라짐(Sudden Loss)’에 대한 무의식의 공포에 시달린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에서 이런 의학 현상이 내러티브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 감독은 이 문제를 만족스러울 정도로 넉넉히 해결하지 못한 채 영화를 끝냈다.


CA688. 빅토르 살바, 〈파우더〉(1995)

초능력을 지닌 인간이 그렇지 못한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해 준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감상적이어서 절망적으로 유감스럽다. 이 초능력자를 장애인의 한 변종과 같은 성격의 것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장애’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 곧 그의 과거를 읽는 것이며, 나아가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 된다는 설정의 유니크함―.


CA689. 임원식,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77)

일제강점기에 주기철 목사가 신사참배를 거부한 배경에는 우리 민족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정신사적인 이유가 놓여 있다. 그 이유에 대한 고찰이 중요하다.


CA690. 칼 슐츠, 〈세븐 사인〉(1988)

요한계시록을 영화로 만드는 이유는 결코 선교의 차원에 있지 않다. 이것이 문제다. 그래서 예수를 구타한 로마 병사가 영원히 죽지 않는 저주를 받았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상상이 감행되는 게 아닐까. 그 저주가 예수의 메시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완전히 생략하거나 무시한 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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