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39
CA691. 타셈 싱, 〈더 폴: 디렉터스 컷〉(2024)
다시 한번, 이야기는 인간을 구원한다. 그 이야기를 하는 쪽이건, 듣는 쪽이건 구원은 다행스럽게도 그 둘 모두에게 적용된다. 이 구원의 은혜는 애초 이야기를 하는 쪽의 목적이 어떤 것인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베풀어진다. 그러니, 스스로를 구원하고 싶다면 무슨 이야기든,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하라. 그것만이 네가 살 길이다.
CA692. 김형태, 〈물고기자리〉(2000)
그녀(이미연)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애인과 맞대면한 상황에서 깨어진 유리 파편으로 손과 발에서 피가 나는 고통을 참는 장면―. 여기서 영화는 끔찍한 참극을 교묘하게, 성공적으로, 피해 간다. 시오노 나나미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그가 총애했던 미소녀 안티노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잡아두기 위한 최선책은 남자 곁에 계속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자 곁을 떠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요컨대 그녀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실패한 것은 그녀가 그의 곁을 끝내, 죽는 순간까지도 떠나지 못한 까닭이다. 그리고 사정이야 어떻든 그가 그녀에게로 돌아오는 것은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음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너무 순진했던 것이다. 사랑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교활한 사람들만의 몫인가를 우리는 〈오! 수정〉(2000, 홍상수)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CA693. 양윤호, 〈리베라 메〉(2000)
박상면의 죽음이 그 어떤 죽음보다 더 비극적인 까닭은 그것이 거의 자살에 가까운 죽음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날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패밀리 레스토랑에 간 이 우직한 가장은 메뉴판에 적힌 음식의 가격이 너무 비싸 가족들을 데리고 그곳을 그냥 나오고 만다. 너무도 간단하게 처리된 이 장면의 정서를 우리는 꼼꼼하게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식당을 빠져나갈 구실을 얻기 위해 두 딸한테서 탕수육 먹고 싶다는 말을 유도해 내는 이 가장의 심정만큼 비참한 것이 또 있을까. 그의 죽음은 바로 이 장면에 뒤이은 상황에서다. 요컨대 더는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CA694. 오손 웰즈, 〈카프카의 심판〉(1962)
원죄의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인간은 원죄 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어느 날 느닷없는 소환과 추궁에 인간은 있지도 않은 자신의 죄를 찾아 헤맨다, 자발적으로.
CA695. 김기영, 〈화녀(火女)〉(1971)
살인 누명에서 집안의 명예를 지키고자 남편을 칼로 찔러야 하는 아내는 순간 자신의 마음을 모질게 다지고자 뭔가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란 남편이 아내인 자신을 괴롭혔던 과거지사의 목록이다. 여기서 알리바이를 위한 궁여지책의 행위는 진짜 살인이 된다. 세상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