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40
CA696. 그레고리 호블릿, 〈프리퀀시〉(2000)
소방대원 아버지는 자신의 행위가 미래의 아들에게 어떤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될는지를 알고 난 뒤 다시는 그 아들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다. 이 부성애가 이 영화의 한 가지 주제라면, 미래의 아들이 자신의 의지로 과거를 바꾸고, 그 결과로 현재와 미래조차도 바꾸어버릴 수 있다는 과감한 상상은 또 한 가지 핵심 주제에 해당한다. 이 영화에 견주면 우리 영화 〈동감〉(2000, 김정권)은 퍽 순박한 운명론의 결과인 셈이다.
CA697. 오손 웰즈, 〈거짓과 진실(F for Fake)〉(1973)
거짓과 진실의 경계선을 정확히 짚어낸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 바깥의 일이다. 거짓과 진실은 우리 머릿속에만 들어 있는 개념의 영역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는 그 어떠한 상황도 거짓과 진실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바로 그것이 삶의 본모습임을 대단히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언급한다. 오손 웰즈만이 할 수 있는 발랄하고도 엉뚱한 조작의 과정을 통하여.
CA698. 오손 웰즈, 〈아카딘씨〉(1955)
기억상실증이라는 현상을 범죄의 수단으로 빌려온 착상의 기발함. 더욱이 그 범죄란 자신의 삶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가공할 만한 기도(企圖)에 해당한다.
CA699. 로드리고 가르시아,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2000)
여러 여자의 삶이 얽히고설킨 난마와도 같은 양상을 지켜보는 관객은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직설적으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있는데도 이상하리만큼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아주 깊은 곳까지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 ‘기분’은 분명 감독의 남다른 연출력 탓이다. 그러니, 이 감독이 장편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CA700. 돈 블루스 & 게리 골드만, 〈아나스타샤〉(1997)
애니메이션. 불가사의한 역사적인 사실에 상상력으로 지은 겉옷을 입히는 작업은 언제나 흥미롭다. ‘아나스타샤’라는 이름 자체가 ‘부활’을 의미하니, 더더욱. 어쩌면 혁명이라는 시대의 격랑 속에 몰락해 가는 러시아 황족의 스토리라는 것은 핵심 과녁이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