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42
CA706. 오손 웰즈, 〈불멸의 이야기〉(1968)
도대체 생판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 여자와 한 남자를 돈의 힘을 빌려 동침하게 만드는 이 늙은 재력가의 의도에는 어떤 이데올로기가 잠재해 있는 것일까. 이 동침은 이 기괴한 재력가의 머릿속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하나의 풍문으로서의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그는 이야기를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을 제작비 조달이 어려워 뜻대로 영화를 만들 수 없었던 웰즈 자신의 삶에 대한 메타포와 같은 것으로 읽는다면, 이 재력가 역을 웰즈 자신이 맡은 심리의 기원을 추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CA707. 오손 웰즈, 〈상하이에서 온 여인〉(1947)
이 영화의 제목은 ‘여인의 음모’여야 하지 않을까. 이 음모에 휘말려 드는 한 남자의 운명은 애처롭기만 하다. 하지만 이 운명을 해결해 주는 것은 영화라는 매체이며, 그 내러티브다.
CA708. 캐롤 리드, 〈제3의 사나이〉(1949)
그 사나이 해리 라임(오손 웰즈)은 분명 악당이다. 페니실린의 함량과 관련하여 천하에 다시없을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자다. 그런데도 그의 애인인 안나(알리다 발리)는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그에게 붙들어놓는 것일까. 하지만 영화는 이 반응의 심리적 기원(起源)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은 영화의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오손 웰즈의 무사 탈출을 슬그머니 기원(祈願)하는 쪽에 선다.
CA709. 오손 웰즈, 〈악의 손길〉(1958)
자신의 빛나는 경력을 술수와 조작으로 이룩해 낸 부패한 형사 퀸란(오손 웰즈)의 몰락은 감독 자신의 자화상으로 읽힌다. 그의 부패는 아내가 끔찍하게 살해당한 뒤부터 시작된 것이다. 요컨대 그의 출세는 스스로를 부패시켜 가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이 부패는 다분히 위악적이어서 자멸의 인상이 짙다. 그 정신적 몰락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여인 마를렌 디트리히가 이 형사한테 건네는 다음과 같은 한마디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당신은 당신의 미래를 이미 다 써버렸어요.”
CA710. 마초성, 〈성원〉(1999)
시각 장애인이 세상을 떠난 뒤 혼령으로 ‘되살아나(?)’ 살아 있는 애인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본다(!)는 아이디어. 또 살아 있는 남자가 죽은 남자와 연적이 된다는 설정. 거기에 죽은 남자가 승리한다는 결말의 다소 난감한 억지스러움. 그리고 임청하와 이영애를 절반씩 섞어놓은 듯한 이미지의 장백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