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45
CA721. 미셸 프랑코, 〈메모리〉(2023)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과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하면, 도대체 얼마나 열려 있어야 ‘그런 사람들도’ 감히 사랑을 할 수 있는 걸까. 그날의 파티에서 사울(피터 사스가드)이 실비아(제시카 차스테인) 곁에 과감히 와 앉은 것은 첫눈에 반했기 때문임을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겠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그의 질녀가 그를 그녀에게 부탁하러 온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질녀의 마음을 얻은 삼촌이 나쁜 사람일 리가 없을 테니까. 그랬기에 그가 치매인데도, 스토커처럼 자신을 쫓아왔는데도 그녀는 마침내 그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오블리비언〉(2013, 조셉 코신스키)에 이은 또 한 번의 ‘A Whiter Shade Of Pale’(Procol Harum)―.
CA722. 조너선 캐플란, 〈무단침입〉(1992)
삶의 규칙을 어긴 사람을 단속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도란 어쩌면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무서운 전언. 이렇게 불안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어쨌거나 예의와 신뢰일 수밖에 없다.
CA723. 왕가위, 〈화양연화〉(2000)
우리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연애 감정에 깊이 젖어 있을 때? 하기야 그것은 어느 만큼은 분명 이상 심리 상태에 해당한다. 그래서 지나고 난 다음에야 그 시절이 화양연화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양연화의 시절은 우리 기억 속에만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인생의 허무를 알려준다. 누구도 알려주기를 꺼리고, 누구도 알기를 싫어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하다.
CA724. 워렌 비티, 〈불워스〉(1998)
정치가가 자신의 삶이 무언가 굉장히 잘못되었다고 자각하고, 그 자각을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반성의 행위로 표출할 때―. 이것이 완전한 픽션인 이유.
CA725. 오시마 나기사, 〈열정의 제국〉(1978)
오시마 나기사는 일본의 검열 시스템에 희생당한, 또는 핍박받은 감독이다. 〈감각의 제국〉(1976)과 연관시켜 이 영화를 볼 때 그것이 너무도 확연히 느껴진다는 것이 문제다. 이것은 그저 하나의 옛날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오시마 나기사라는 ‘이름’이 굳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