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146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46

by 김정수

CA726. 롭 코헨, 〈스컬스〉(2000)

모든 폐쇄적인 성격의 조직은 사이비 종교, 또는 그 집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파벌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병든 사회라는 명제가 성립하는 것이다.


CA727. 존 프랑켄하이머, 〈레인디어 게임〉(2000)

범죄와 반전(反轉)과 그 반전을 통한 일확천금의 행운이 굳이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해야만 할 까닭은 없지 않을까.


CA728. 기타노 다케시, 〈키즈 리턴〉(1996)

깨어나니 꿈이고, 끝났는가 싶었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고―. 그렇다면 인생은 아직 살 만한 것이 아닐까. 이 행운이 유일하게 허락되는 대상은 청소년이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 가능성으로 충만한 청소년들조차 이미 결정된 운명의 길을 따라가도록 강제하는 시스템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 이 영화는 마지막 순간 여지없이 픽션이 된다. 따라서 그 엔딩에서 그들의 중얼거림은 이 영화를 픽션으로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대사인 셈이다. 하기야 영화 자체가 애초 픽션 아니던가! 기타노 다케시가 명실상부한 감독이었을 때.


CA729. 스탠리 큐브릭, 〈샤이닝〉(1980)

그(잭 니콜슨)를 미치게 만드는 것은 아들의 ‘샤이닝’이 아니라, 그 자신이다. 그는 바로 그런 광기의 상황이 필요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도저히 미치려야 미칠 수 없는 아내와 아들은 그곳을 탈출해야만 한다. 그 광기를 허용하지 않는 ‘바깥’ 사회는 그와 같은 족속의 사람에게는 이미 삶의 터전이 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그의 광기는 처자식을 내쫓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처자식을 살리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샤이닝과 광기의 충돌 또는 대결에서 어느 쪽이 이겼느냐를 따지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CA730. 데이비드 코엡, 〈스터 오브 에코〉(1999)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억울함 풀어주기. 하지만 그 억울함은 죽음 뒤로도 계속된다. 그러니 모두 착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 있는 사람의 삶도 곤란해진다. 원혼(冤魂) 내지는 원귀(寃鬼)라는 설정은 동서양을 막론한 아이디어, 또는 강박관념인 듯. 따라서 어쩌면 이것은 산 사람의 소망 또는 죄의식이 빚어낸 망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망상은 본성일 것이다. 인간이 ‘각자의’ 망상에서 벗어나기가 그토록 어려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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