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76
CA876. 레이첼 텔러레이, 〈탱크 걸〉(1995)
문제는 탱크 ‘맨’이 아니라 탱크 ‘걸’이라는 것. 이 영화의 발랄함의 거의 전부는 바로 이에서 연유한다.
CA877. 스티븐 스필버그,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
어떤 사기가 통하는 사회인가. 그 사기의 방법이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주는 바로미터라는 것. 미국의 1960년은 그런 시기였다. 따라서 어쩌면 베트남전은 그 수준을 벗어나기 위해서 치러야만 했던 혹독한 대가였는지도 모른다.
CA878. 조너선 캐플란, 〈무단 침입〉(1992)
삶의 규칙을 어긴 사람을 단속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도란 어쩌면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무서운 전언. 이렇게 불안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결국, 기어이, 예의와 신뢰다.
CA879. 마틴 스코세이지, 〈비상근무〉(1999)
도시에서 인간의 구원을 꿈꾼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리얼리티임에도 지나치게 상투적인 발상이다. 물 과다 섭취로 말미암은 염분 부족 현상이 치명적인 병이라는 것. 그러니 물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다? 귀담아들어 둘 대사. “영혼은 시체로 돌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죽은 시체에 화가 나기 때문이다.” “억지로 살리는 것은 죄악이다.”
CA880. 스티븐 달드리, 〈디 아워스(The Hours)〉(2002)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는 되풀이된다. 뭇 여성들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세상의 수많은 댈러웨이 부인들의 존재가 그 증거다. 그녀는 댈러웨이 부인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해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남편은 묻는다. “왜 소설 속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어야만 하지? 아니면, 누군가가 죽어야만 하지?” 그녀는 답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삶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 결국 그녀는 살기 위해 쓰는 것이다. 삶을 위해 죽음을 끌어들이는 것―. 그녀 소설 속 주인공들, 아니, 뭇 소설들 속의 주인공들이 죽는 것은, 어쨌거나, 삶을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