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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Jul 10. 2024

22. 신세를 갚아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무역

  -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 공정무역》

22. 신세를 갚아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무역 /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 공정무역》 - 마일즈 리트비노프 & 존 메딜레이 지음, 김병순 옮김, 모티브

가슴을 치는 첫 문장

   가슴을 치는 첫 문장을 만나면, 혹은 첫 문장이 가슴을 치면 그 책을 끝까지 단숨에 읽지 않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 책이 그랬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요.

   ‘우리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이 강렬한 한마디는, 저자가 책머리에 밝혀 놓았듯이, 마틴 루터 킹의 말이기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식탁 머리에 앉으면 사람들은, 또는 우리는 먼저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수확한 커피를 마시거나,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차를 마시거나, 서아프리카 사람들의 손을 거친 코코아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일터로 나서기 전, 하루의 시작에서부터 우리는 벌써 온 세계 사람들의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라는 인식입니다.

   ‘신세를 지고 있다’라는 말이 가슴을 옥죄고 듭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너무나 마땅하기에, 마치 공기의 고마움을 의식하지 못하듯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잊고 사는 말이지요.

   ‘공정무역’ 정신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 놓여 있습니다.     


빚을 갚는 첫걸음

   ‘신세’는 다른 말로 하면 ‘은혜’이기도 하고, 동시에 ‘빚’이기도 합니다. 갚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이 점하고 관련하여 저는 ‘공정무역 제품을 사야 하는 50가지 이유(50 Reasons to Buy Fair Trade)’라는 이 책의 원제가 퍽 일목요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이 책은 공정무역의 당위성 50가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셈입니다. 이 당위성에 대한 공감이 빚을 갚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인간의 조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어머니 뱃속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온통 나 아닌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신세를 지면서 살아갑니다. 신세를 지지 않고는, 은혜를 입지 않고는 도무지 살아갈 방도가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입니다.

   어버이의 은혜나 스승의 은혜는 아예 기념일을 정해놓고 공적인 차원에서 기리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소리는 어린 시절부터 하도 누누이 들어서 이제는 거의 잠재의식이 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갚지 않으면, 보답하지 못하면 우리는 여지없이 죄책감에 빠집니다.

   다시 말하면, 그렇듯 죄책감에 사로잡힐 만큼 그것은 이미 우리한테 뼛속 깊이 스며 들어와 있는 문제라는 뜻입니다. 그런 인식이 가족을 지키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일정하게 이바지한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요.     


공정무역 정신의 바탕

   공정무역 정신의 바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시야를 넓히면 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것이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친절하게 가르쳐줍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약간의 선행학습이 되어 있습니다.

   농민들이 농사짓느라 흘린 땀과 눈물을 생각하여 밥알 한 톨도 함부로 버리거나 남겨서는 안 된다는 소리를, 모르긴 몰라도, 자라면서 한 번쯤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는 가족이라는 비좁은 틀을 뛰어넘어 우리가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마도 최초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공정무역 정신은 바로 이 마음을 온 세계로 넓힌 개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역을 통해서 온 세상 사람들이 만든 것을 1년 365일 먹고, 입고, 쓰고, 누리며 살지 않을 수 없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이 모든 것을 ‘신세’로 파악하는 마음가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듯이, 1950년대에 유럽과 미국에서 푸에르토리코와 같은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생산자들이 만든 제품과 중국의 난민들이 만든 수공품을 팔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공정무역도 바로 이런 마음이 바탕인 셈입니다.     


공정한 무역과 불공정한 무역

   공정무역의 개념은 간단하고도 명확합니다. 말 그대로 ‘공정한(fair) 무역(trade)’입니다.

   한데, ‘공정’이라는 말은 반사적으로 ‘불공정(unfair)’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것이 열쇠입니다. 불공정한 무역이 있기에 공정한 무역에 대한 필요성이나 갈망이 생겼으리라고 추측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지극히 논리적인 귀결입니다.

   원조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었던 가난한 후진국과 개발도상국 시절을 거쳐 마침내 선진국에 다다랐다고 자부하는 우리나라는 더더욱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오로지 무역에서 얻은 이익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역을 하는 까닭은 이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무역은 쉽게 말하면 장사입니다. 손해 보는 장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장사를 하면 할수록 이익이 생기지 않고 자꾸 손해만 보게 된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원인을 빨리 알아내어 대처해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그 장사 하루빨리 집어치우고 다른 일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입니다.

   문제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무역에서 이렇듯 있을 수 없는, 또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정말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넉넉한 사람은 더욱더 넉넉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더 가난해진다’라고 번역하는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이라는 말은 여기에도 어김없이 들어맞습니다. 한쪽은 무역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부자가 되고, 다른 한쪽은 무역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가난해집니다. 갈수록 더욱더 가난해지는 나라의 갈수록 더욱더 가난해지는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가 무역을 통해서 이득을 보았다면, 그것은 적어도 어느 만큼은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입은 손해를 대가로 얻은 이득이라는 뜻입니다. 부당한 손해요, 부당한 이득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갚아야 할 신세의 내용입니다.     


부당함을 바로잡으려는 노력

   니카라과의 커피 재배 농민들 수천 명은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커피를 팔아야 하는 불공정 무역으로 결국 삶의 터전을 버리고 한데에서 노숙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습니다.

   너무나 많은 이득을 중간상인들이 가져갑니다. 최대한 싸게 사서 최대한 비싸게 파는 것이지요. 이윤추구 지상주의의 폐해이기도 합니다.

   공정무역은 이런 부당함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입니다.

   저자들이 이 책을 집필하던 시점에 큰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초를 겪은 아이티라는 나라도 그런 식으로 가난해진 나라의 하나입니다.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를 불공정하게 이루어지는 무역에서 찾는 데서 공정무역은 출발합니다.     


공감, 공정무역의 놀라운 점

   물론 ‘공정무역’은 기본적으로 경제(학) 용어지만, 당사자들의 다양한 증언을 통해서 독자가 이 개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전해준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도드라진 특장입니다.

   이 증언들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불공정한 무역의 부당함과 공정한 무역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스스로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됩니다.

   도미니카에서 바나나를 재배하는 레지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공정무역을 하기 전에는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었어요. 이제는 나 자신과 우리 아이들, 지역 사회, 그리고 우리나라 전체를 도울 수 있어요.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렇습니다. 이것이 공정무역의 실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만 본다면 공정무역은 빈민구호운동 같은 성격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습니다. 니카라과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여성 농민 블랑카의 말은 이 오해를 불식시켜 줍니다.

   “우리 커피를 사세요. 품질이 좋으니까요. 우리가 가난한 농민이라서 사 달라는 것은 아니에요.”

   이것이 공정무역의 놀라운 점입니다.     


최고의 품질을 지향한다

   맞습니다. 공정무역은 최고의 품질을 지향합니다.

   그럴 수 있는 까닭은 정당한 가격에서 오는 정당한 이득에 있습니다. 이것을 이 책에서는 ‘사회적 초과이익’이라고 명명합니다.

   이 초과이익을, 토양과 수질을 보전하고, 나무를 심고, 유기농 생산을 하고, 축대를 쌓고, 퇴비를 만들고, 곡물을 수확하고 난 뒤 환경친화적인 가공 기술을 익히고, 상하수도 시설을 정비하고, 전기 시설을 하고, 나아가 더 좋은 주거 시설과 더 깨끗하고 쾌적한 주변 환경을 만들어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 쓰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싼 가격에서 이득을 얻어내려고 무리하게 맹독성 농약을 살포하여 품질도 떨어지고, 생산자의 건강도 해치고, 환경마저도 점점 더 나빠지는 불행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더불어, 이 모든 과정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도 공정무역의 한 중요한 구실입니다.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

   그렇다고 공정무역이 세계의 시장경제 체제를 억지로 무너뜨리려 한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오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공정무역은 시장을 왜곡하지 않으며, 다만 시장이 가난한 사람들한테 불리하게 움직이지 않도록 애를 쓸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당한 이득이 돌아가도록 하는 ‘공정여행’의 개념까지 보태면 공정무역의 전체 그림이 완성됩니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공정무역 제품을 살 것이냐, 불공정무역 제품을 살 것이냐―.

   이 선택에 따라 세상은 이렇게, 또는 저렇게 변할 것입니다.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가 함께’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책의 마지막 전언(傳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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