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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스톤 Aug 27. 2023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이해가 안 되네

"이거 뭐예요?"

울산으로 이사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아내가 우편물 하나를 건넸다.

억! 과속티켓이다. 아파트 후문 입구 어린이보호구역에서 49km로 달려서 찍혔다. 범칙금 6만원. 아파트 문 앞은 제한속도 50km인데? 뭔가 이상해서 현장에 가서 확인을 했다. 이게 뭐야,  문 100m 전에는 제한속도 50km 표시가 있고 문 바로 앞에 30km 표식과 단속 카메라 달려있었다. 30km 표식은 못 봤는데?

(근처 초등학교 앞 사거리에 속도 30 단속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거기서 400m 떨어진 아파트 문 근처에도  속도 30 단속 카메라설치되어 있다)


3일 뒤에 범칙금 통지서 세 장이 더 날아왔다!

모두 49~50km가 찍혀있었다. 착실하게 50km을 지켰네.

며칠뒤 티켓이 또 날아왔다. 이사 온 날부터 첫 티켓 받은 날까지 8일 동안 8장의 과속티켓이 날아왔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속도로. (정문으로 다녔을 때는 단속 카메라가 없어서 안 찍혔다)

(아파트 후문 100미터 전)


(니가 언제부터 거기 있었지?)


받은 과태료 통지서를 거실바닥에 좌악 펴놓고 분석에 들어갔다. 혹시 치매 초기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왜 30km 표식을 못 봤지?

차를 타고 확인해 보니 내비게이션에서 속도 경고방송이 나왔다. 그런데도 8일 동안이나 모르고 지나갔다.

아무리 분석해도 답이 안 나왔다.

(같은 장소, 같은 속도, 8장)


"경찰서 찾아가서 해결하고 오세요"

김여사 지시가 떨어졌다.


통지서와 설명할 지도를 들고 지역 관할 경찰서 교통과로 찾아갔다. 35년간 회사에서 수없이 해왔던 회의, 중재, 협상, 쌓아왔던 실력(?)을 발휘해 볼 기회였다. 경찰서 주차장에 도착하자 갑자기 심장이 쿵쿵거렸다.

(관할 경찰서 교통과)


별관 2층 교통과 문을 열었다. 8명의 경찰관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몸이 움찔했다. 젊은 경찰 아저씨가 조그만 원탁 테이블로 나를 안내했고 용건을 물었다. 준비한 약도를 꺼내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약도를 준비해서 차근차근)


삼십 초쯤 얘기했을 때, "김순경, 내가 설명드릴게"하며 안쪽에 앉아있던 최고 연장자로 보이는 분이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B계장입니다. 제가 말씀 들어보겠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최대한 짧게 얘기했다. 다 듣고나더니 “김순경, 이면지 몇 장만 갖다 줘" 듣는 순간 직감했다.

‘아... 장기전이다'

B계장은 도로교통법 역사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면 끝나려나… 설명이 오분이상 길어지면 나는 포기하는 체질인데, 그걸 알고 계신 건가…'


"저... 잘 알겠는데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연속으로 여덟 번, 그것도 똑같이 49~50 속도로,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30km 단속기 설치 위치가 좀 애매합니다. 초등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아파트 입구에 왜 이게 있는지 이해가 잘 안 되네요?" 나름 압박 작전으로 조여들어갔다.

"그게 말입니다. 교통법규가 말입니다". 과거 사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 또 30분짜리다'


아내의 지시사항이 머리에 떠올랐다. '최소한 반으로 줄여보세요'

어느 타이밍에 협상을 해야 하나 머리를 굴렸다. 사무실 8명의 시선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다 이해했고요.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여덟 번이나 연속으로 찍히는 건 실수 외에 어떤 환경적 영향도 있는 것 같으니 꼭 현장 확인해서 개선할 점이 있으면 개선해 주십시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정. 상. 참. 작... 좀... 안될까... 요?"

5초간 침묵.

내 목 안에서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만, 이미 중앙 전산에 등록이 돼 있어서..."


가슴속에서 뭔가가 불쑥 올라왔다

'더 이상 비굴한 모습 보이지 말자'


"알겠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경찰서를 나오면서 생각했다. '나라에 세금 더 냈으니  애국한 거고 안전운전 하라는 조상님 뜻이다'


패잔병처럼 흐늘흐늘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김여사 얼굴이 커다란 바위처럼 떠 올랐다.



표지사진 :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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