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부부가 다녀온 후 꼭 가보라고 했다. 내가 딱 좋아할 분위기라며 임랑 해수욕장에 있는 ‘정훈희 김태화 꽃밭에서’ 카페를 추천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주말에만 라이브 공연이 열리고 있었고 중년들이 옛 추억을 떠올리며 많이 찾아간다고 했다.
장소가 임랑 해수욕장이다. 옛날에는 그곳을 좌천 해수욕장이라 불렀고 대학 2학년 때 여자 친구와 기차 타고 놀러 갔던 추억의 장소다.
분위기를 살펴볼 겸 평일에 찾아가 보았다. 실내가 생각보다 넓었고 라이브 하기에 딱 좋았다. 아내와 바닷가 발코니 쪽 명당자리에 앉아 음악 들으며 바다 풍경을 가슴에 담았다.
일주일 뒤 예약을 하고 다시 찾아갔다. 오후 3시 타임이라 2시쯤 도착해서 맥주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마시는 낮술인데 정훈희 누님 노래를 듣는 기대감에 그날따라 술맛이 무척 달콤했다.
라이브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는 다 찼고 간이 의자까지 추가했다. 우리가 보기에 젊은 분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맥주 4캔을 마실 즈음 정훈희 님이 등장하셨다.
와아~~~ 환호성
‘진달래 피고 새가 울면은 두고두고 그리운 사람'
첫 곡을 흥겨운 <꽃길>로 시작한다. 내가 국민학교 다녔을 때 발표한 노래인 데도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귀에 익은 노래이다.
두 번째 곡이 이어진다.
‘사연이 무엇이길래 저토록 비를 맞으며’
<빗속의 연인들>이다. 율동을 하면서 노래하는 모습, 아주 유연하시다.
잠시 관객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부산 억양이다.
“여기 오는 오빠야들은 내 노래 끝나고 태화오빠 노래 할 때는 다 나가고 안 보인다”
“하하하 호호호 "
다음 곡 <진실>이 이어진다.
‘우리들의 사랑이 익어 갈 때면 밝고 맑은 얼굴에 웃음이 가득’
고음이 여전히 맑다. 71세에 저 목소리가 나오다니 가슴이 뭉클 해진다.
노래하는 모습이 30년쯤 과거로 돌아가 있는 것 같다.
노래를 마치고 과거에 날렸던 시절 추억담을 들려준다. (위문공연 에피소드)
관객들 웃음소리. 틈을 이용해서 내 앞 테이블 위 맥주 한 캔을 재빨리 비운다.
다음 노래는 79년 칠레 국제가요제 최우수 가수상 수상곡인 <꽃밭에서>이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 함께 율동을 한다. ‘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불렀지만 정훈희 님을 넘지 못한 곡이다.
(조관우가 리메이크해서 이 노래가 다시 유명해졌다고 조관우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드디어 <안개>가 나온다.
정훈희가 17세에 불러서 히트했던 곡인데 최근 ‘영화 헤어질 결심’ OST곡으로 불러 다시 히트한 노래.
송창식과 듀엣으로 불렀는데 아주 잔잔하고 감미롭다.
오늘 노래도 OST곡처럼 키를 낮게 잡고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송창식이 노래하는 부분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바닷가 테라스 쪽에서 김태화가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
와아!! 함성 소리.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마지막 곡은 <그 사람 바보야>이다. 빠른 노래에 율동으로 관객들의 합동 군무를 이끈다. 내 몸도 자동으로 들썩인다. 앞에 놓인 맥주를 연거푸 마신다. 숨이 가빠진다.
노래를 모두 마친 누님은 환호 속에서 무대밖으로 걸어가시고 김태화 노래가 이어진다.
뒤쪽을 보니 누님 노래할 때 계시던 나이 드신 오빠야들이 안 보인다.
내 앞 테이블밑에는 빈 맥주캔 8개가 놓여있다.
선글라스 쓰신 73세 김태화 형님의 희끗희끗 흰머리와 콧수염이 멋있다.
첫 노래는 신나는 팝송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이어서 감미로운 노래 What a wonderful world.
계속해서 가요와 팝송이 이어지고 관객들의 호응이 점점 뜨거워진다.
간간이 관객과 대화, 웃음
사랑과 영혼 주제곡 unchained melody가 흐르고 엔딩 곡으로 홍민의 <석별>을 부른다.
‘그래도 꼭 한마디 남기고 싶은 그 말은 너만을 사랑했노라 진정코 사랑했노라’
그래, 나도 청춘일 때는 그런 적 있었지...
가수와 관객이 마주 앉아 같이 호흡하고 웃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두 분이 살아가는 모습의 이면은 모르지만 오늘은 참 건강하시고 청춘이셨다. 10년 후쯤 어느 모임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기타 들고 노래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김여사는 태화 형님과 기념사진을 찍었고, 카페를 나와서 아내와 둘이 손잡고 바닷가를 거닐었다.
(낮술은 주위 시선도 못 알아봤다)
백사장을 걷는 동안 40여 년 전 어떤 그리움 하나가 우리 둘의 발자국을 따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