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우리는 흔히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 말하며 시각을 진리의 척도로 삼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해 우리는 때때로 눈을 감아야 한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 우리는 망막에 맺히는 상(像)의 경계 안에 갇히기 때문이다. 시각은 우리에게 세계를 선사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만을 세계라고 믿게 만드는 거대한 감옥이 되기도 한다.
1. 찰나의 어둠 속에서 만나는 생명의 칼날
눈을 감는 순간, 익숙했던 사물의 형체는 사라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짧은 찰나, 어둠은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역동적인 창조의 현장으로 변모한다. "파닥이는 갈치의 칼날"처럼 날 선 생명력이 어둠 속에서 번뜩인다. 이것은 진화의 역사 속에서 눈이라는 기관이 생기기 전, 온몸으로 우주를 감각하던 원초적 생명체가 조우했던 근원적 공포이자 희열이다.
눈이 없던 시절의 생명체는 무엇을 갈구했을까? 그들이 '눈'이라는 동일한 창을 필요로 했던 이유는 단지 생존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창조주가 그 정교한 수정체 속에 우주의 신비를 압축해 넣어 보여주려 했던 신성한 계획이었을까. 무엇이 되었든, 눈을 감는 행위는 이 문명화된 시각을 거스르고 태초의 생동감 앞에 서게 하는 용기 있는 퇴행이다.
2. 시각의 경계, 각자의 세계
다시 눈을 뜨면 우리는 각자의 '해석'으로 돌아온다. 인간은 인간의 색깔로, 개미는 개미의 시선으로, 물고기는 물고기의 눈으로, 박쥐는 퇴화된 눈으로 각자의 우주를 구축한다. 내가 보는 빨간색이 타인의 눈에도 같은 빨간색인지 알 수 없듯, 우리는 저마다의 눈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만 세계를 소유한다.
이 지점에서 시각은 단절의 도구가 된다. "너는 너의 눈의 세상, 나는 나의 눈의 세상"에 머물며 서로의 진실을 타진한다. 감각이 정교해질수록 우리는 본질보다는 표피에, 무한한 가능성보다는 규정된 형체에 매몰된다. 눈을 뜨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닿을 수 없다.
3. 한밤중에 빛나는 내면의 태양
그렇기에 철학은 눈을 감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다. 외부의 빛이 차단된 한밤중에야 비로소 마음의 눈이 번쩍 뜨이기 때문이다. 이는 논리적 시각을 넘어선 '통찰'의 영역이다. 태양이 지고 모든 사물이 제 색깔을 잃어버릴 때, 우리 내면에서는 지혜라는 이름의 새로운 해가 떠오른다.
눈은 현상을 보고, 마음은 본질을 꿰뚫는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기 위해 눈을 감는 수행은, 우리를 둘러싼 가짜 경계들을 허물고 진정한 존재의 층위에 도달하게 한다. 결국 가장 눈부신 세계는 시력을 잃은 어둠 속에서, 혹은 모든 편견을 지워낸 마음의 심연에서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