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행사

by 김준완

찢어진 달력 속에서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무엇인가를 오래 씹고 있었다


피비린내는 사라졌지만
눈동자만은 남아
다음 세대의 얼굴을 닮아간다


광장에는 해마다 같은 문장이 세워지고
누군가는 또박또박 읽는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문장을
조금 더 굵은 글씨로 받아 적는다


숫자는 벽에 박히고
그 위에 또 다른 숫자가 겹쳐진다


신화는 이름을 바꾸고
신은 기념일이 되고
자연은 교과서 속 그림이 된다


그래도 사람들은 말한다
이번에는 다르다고


나는 공책 맨 끝장에
오늘의 날짜를 적는다


적고 나서야
작년에도 같은 말을 들었다는 걸 떠올린다


지우지 않는다


그 위에
조금 더 진하게 덧쓴다

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