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글의 약속

essay

by 김준완

시를 쓰다 보면, 머릿속에서 예상치 못한 장면들이 살아 움직인다. 썩어가는 열매를 깨무는 개미들이 떠오르고, 그 작고 날카로운 턱이 누군가의 생이 남긴 달콤한 멍자국마저 도려내는 순간을 떠올린다. 글로 그것을 그려낼 때, 단어 하나하나는 날카로운 턱과 썩어가는 열매처럼 서로를 갉아먹으며,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주체와 객체, 자음과 모음까지도 몹쓸 파도를 일으키듯 요동친다.


이 과정 속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시와 소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삶과의 약속이라는 것을. 썩어가는 열매와 개미의 날카로운 턱이 만들어내는 장면이 잔혹하면서도 아름답듯, 글을 쓰는 일은 우리 내면의 어두움과 외로움, 두려움까지도 정직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행위다.


마치 고양이의 눈을 바라보며 밤새 주고받는 깜박임 속에서 마음이 젖어드는 것처럼, 소설 속 묘사도 우리에게 삶의 감각을 돌려준다. 글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감지하겠다


시와 소설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마주하겠다


매 순간을 기록하며, 살아있음을 확인하겠다


그래서 시와 소설은, 결국 아름다운 삶을 향한 조용한 약속이다. 우리가 느끼고 쓰는 모든 장면과 문장은, 그 약속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