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놀랐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일부로 능청스럽게 북한 사투리를 섞어가며 받아쳤다. 이내 단장은 머쓱한 듯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못 들은 것으로 하시라요."
살면서 북한에 온다는 것도 단 한 번도 상상을 해본 일이 없는데, 귀화해서 살라니. 본업의 특성상 세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정보를 많이 듣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터라 '투잡으로 정보원을 하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을 해보았지만 북한 당국 소속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너무도 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날씨가 좋네요, 다음 경기는 꼭 이겨야 저 친구들도 체면이 좀 설 텐데."
어색한 분위기에는 날씨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던가, 괜스레 1승도 못하고 있는 벨라루스 선수들의 훈련을 보며 걱정을 곁들여 겨우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북한의 4.25 체육단 훈련 구장에 붙어있는 표어 '백두'를 상당히 강조한다.
훈련을 마친 우리 팀은 바로 숙소로 이동했다. 대회 이야기를 좀 하자면우리 벨라루스 팀은 북한 팀, 한국 팀, 러시아 팀 할 것 없이 한 경기도 승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도 북한 선수들은 15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회 참가 전 '유럽' 구단 특유의 콧대 높은 자세를 유지하며 고자세로 임했던 팀의 지도자들도 조금은 주눅 들어 보인게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일까. 계속되는 패배에도 선수들은 나와 관리 스태프들에게 이런저런 장난을 치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이중에 나와도 친하게 지내던 몇몇 녀석들은 핸드쉐이킹 동작까지 함께 만들며 즐겁게 하루하루 보냈다.
북한 4.25 체육단과의 경기, 비장한 발걸음과 '졌지만 잘 싸웠다.'
대회 일정은 훈련과 경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회 호스트인 북한 당국에서는 중간중간 관광이나 외식도 시켜주었는데, 하루는 평양 동물원으로 전체 선수단이 간 적이 있었다. '오 꽤나 잘 꾸며놨네' 처음 입구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동물원은 기아와 빈곤 두 단어로 수식이 되는 북한의 이미지에 상반되는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제일 친하게 지냈던 포드비(Podby)와 평양 동물원 입구에서
북한의 동물원은 특이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뜬금없는 곳에 당의 선전물을 부착해 두거나 단순히 동물을 설명하는 설명판에도 '위대하신 령도자'를 칭송하는 내용을 넣는다는 것이었다. '오만곳에 다 써놨네.' 너무 노골적인 선전물들에 거부감이 들었지만선수들과 즐겁게 동물원 구경한 후 기념품 점을 들려 기념품을 구매했다.
동물원 내의 기념품 점이었지만, 뱀 술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외에도 부채, 담배, 술, 한복 등 동물원과는 딱히 관련 없는 물품들도 많이 있었다. 아무래도 외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외화 벌이를 위해 판매하는 모양이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거부기를 보내주셨다 (좌) / 평양 동물원 내 식물원 (우)
동물원에 나오면서 들어온 평양의 풍경은 매일 보던 훈련장과 경기장 가는 길과는 달랐다. 거리에는 차보다 자전거가 많고,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깔끔한 도로와 고층 건물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반면에 지나가는 행인들의 모습을 보면 농부 같이 피부가 많이 그을려있는 모습이었고 광장에는 마치 운동회를 연습하듯 군중들이 한대 모여 흘러나오는 노래에 동작을 맞추고 있었다.
평양 중심에 있는 광장 (좌) / 다리를 건너고 있는 평양 시민들 (우)
이날은 거의 관광으로 일정을 짜여있었다. 동물원에 이어 바로 외부 회식이 있었는데 우리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현지지도하신 결혼식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음식들은 나름 화려한 겉보기와는 다르게 간이 쌔지 않아 맹맹한 맛이 대체적으로 많이 나왔다. 하지만 매번 호텔 연회장에서만 비슷한 음식들을 먹던 터라 다들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식사를 하고 있으니 문득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외국인들에게 '보통'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일부로 더욱 극진한 대접을 한 것이겠지만, 북한에 대해 너무 많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 입구에 부착되어 있는 팻말 (좌) / 회식 식단 (우)
바쁜 하루하루가 지나고, 조별리그의 마지막 경기를 비기며 간신히 8팀 중 7위를 기록한 우리 팀은 그렇게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어지는 4강 토너먼트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의 분요도코르와 평양의 평양국제학교 그리고 한국의 강원도 선발 팀과 4.25 체육단이 맞붙는 대진이 나왔다.
일정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지만,나는 불안함을항상 가지고 있었다. 외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평양에서의 생명이나 안전의 위협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가장 불안했던 것은 소식을 듣지 못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영국 런던에서 (2023)
*본 글의 북한말은 실제 워딩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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