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설명을 해보자면, 대회 기간 중 외부로 나가는 일은 크게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시합과 연습 그리고 유소년 아이들을 위한 관광으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이 외의 나머지 시간은 호텔 내에서 보내며 일정을 대기하거나 휴식하는 여유로운 일정들이었다. 북한 당국 관계자의 동의나 동행 없이 호텔 외부로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특히, 외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있어 나는 개인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지만 캐나다에 있는 가족들이나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평양 양각도국제호텔 연회장
식사 같은 경우 아침 점심 저녁은 거의 호텔에서 해결했다. 팀별로 연회장에서 뷔페 형식으로 밥을 먹는 것이었다. 메뉴의 경우 빵이 나오거나, 한식 메뉴가 주를 이루어 있었고 외국 선수들도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오믈렛 등도 제공되었다. 연회장 앞에는 항상 단아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 안내원들이 참가 팀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안내해주었는데, 마치 한국의 아이돌 같은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말을 붙여보고자 이야기를 건네는 이들도 꽤 있었다.
식사 메뉴, 배식 하는 선수들 그리고 금강샘물
비슷한 하루하루 중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는 오후 7시쯤 저녁이 끝나고 난 뒤에는 각 팀을 인솔하는 북한의 인솔자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한 시간후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아마 각 팀의 동향 및 점검 보고를 내부적으로 하는 모양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 중의 하나는 객실이 도청당하고 있다는 의혹이었다. 어떤 날은 방에서 매번 똑같은 식사 메뉴에 대한 윌렌에게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형 여긴 닭고기밖에 없나 봐요. 다른 종류도 먹고 싶은데...”
하늘이 내 소원을 들어 주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 들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며칠 내내 동일 메뉴였던 식사에 다음 날 바로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메뉴에 추가되어 나왔다.
“오케이, 이제부터 최고 존엄 이야기 금지.”
대회 결승전에 김정은 위원장이 오냐 안 오냐를 두고 호텔 객실에서 매번 추리를 펼치던 윌렌과 나는 방에서도 조심하게 말하며 많은 주의를 많이 기울였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 우리 참가자들과는 다르게 친북 국가로 분류되는 중국,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러시아의 선수단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호텔 국제 전화 서비스를 이용해 유선상으로 본국에 있는 가족들과의 통화도 가능했는데, 비용이 꽤 비쌌다.
“나는 잘 생겼으니까 공짜로 해줘.”
한 우즈벡의 선수가 한 말이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하며 값을 지급하지 않아 북한 호텔 직원들이 많은 애를 먹었다. 한 호텔 직원은 심지어 그 팀 담당도 아닌 우리를 찾아와 푸념하며 도움을 청했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 당시 그나마 국제 사회에서 자국편을 들어주던 우방국의 어린아이들에게 엄격한 경고나 재지를 할 수 없던 것이 아니었을까?
평양 시내: 경기장 가는 길
한편, 함께 매일 얼굴을 보고, 일정을 소화하고, 밥을 같이 먹다 보니 어느새 나는 북한 관리 인원들, 통역, 선수들 할 것 없이 서슴없이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있었고, 편안하게 사는 이야기나 남한과 북한의 이야기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훈련중인 벨라루스 선수들
하루는 당시에 이탈리아 세리에 A 칼리아리와 유벤투스에서 뛰며 많은 관심을 받았던 북한의 한광성 선수가 뛰었던 4.25 체육단의 경기장에서 훈련하고 있었을 때다. 한창 관중석에서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단장이 내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시 덥지 않은 날씨 이야기와 아이들 훈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단장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준우 선생, 내 물읍시다. 이전에 문재인 대통령께서 평양에서 연설하고 가신 것 알고 있습네까? 남조선의 인민들은 이걸 보면서 어떻게 생각합네까?”
아무리 편하게 농담하고 형과 동생 같은 사이가 되었지만, 예상 밖이었다. 답변을 생각하던 나에게 그는 내가 무어라 대답할 틈도 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는 한민족인데 갈라져 살아야 되겠습네까? 그래서 말인데 준우 선생은 우리 북조선에서 살 생각은 없습니까? 내 만약에 좋다고 하면, 윗분들께 이야기해서 아파트 한 채, 자동차 한 대 그리고 고운 색시도 소개해주겠습네다.”
북한 귀화 제안이라니, 살면서 받아본 제안 중 단연 가장 놀라운 제안이었다.
-체코 프라하에서 (2023)
*본 글의 북한말은 실제 워딩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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