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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o 준우 Nov 01. 2023

여기는 평양, 양각도국제호텔

평양 도착: 메이드 인 북한

나는 애써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선수단 맨 뒤쪽으로 가 다시 줄을 섰다.


북한 4.25 체육단의 초청 공문과 어린 유소년팀이라는 점 때문인지 나를 제외한 모든 인원의 입국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저쪽으로 가시라요”


이윽고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심사관은 많은 인원에 지친 것인지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고 뒤쪽에 있는 수화물 검색대로 갈 것을 명령(?)했다.


금괴를 챙긴 것도, 마약을 반입한 것도 아닌 나는 입국 심사 때보다는 안심하며 수화물 검색대로 향했다. 왜 슬픈 예감은 항상... 그럼 그렇지 아무 일이 없을 리가 없었다.


참가를 번복하며 나를 힘들게 했던 벨라루스 팀의 감독 바딤의 수화물에서 성서가 발견된 것. ‘하 저 멍청한 XX’ 속으로 얼마나 욕을 했는지 모른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성서를 가져왔다는 건 자칫 잘못했다간 스포츠 행사 참가가 아닌 포교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당사자인 바딤의 표정도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게 뭡네까?”


제복을 입어 한층 무서워 보이는 인상의 공항 요원의 질문에 오는 내내 표정의 변화도 없었던 바딤은 영어로 경기 전 본인의 기도를 위한 것이며, 절대 포교 활동을 위해 가져온 것이 아니라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바딤이 계속 말하게 되면 불필요한 말실수를 할 것으로 보였다.


“가져갈 수 없다면 놓고 입국하겠습니다. 저희가 북한에는 처음 와 봐서 잘 몰랐어요”

나는 바딤의 말을 끊고 말했다.


*참고: ‘북조선’ 또는 ‘조선’이 아닌 ‘북한’이란 단어는 북한 가서 쓰면 매우 불쾌해한다. 하지만 당시는 필자는 이 사실을 몰랐다. 당신이 평양 여행을 계획한다면 꼭 기억할 것.


“음… 가지고 가시라요. 단 가방에서 꺼내거나 호텔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마시라요.”


아량을 베푼 검색대 요원 덕에 우리는 한차례 또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넌 제정신이냐?”


우여곡절 끝에 공항에서 빠져나오며 폭발해 버린 나는 나보다 9살이나 많은 바딤에게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오후 8시쯤 된 공항 밖의 풍경은 ‘암흑’이었다. 공항 내부도 켜진 전등이 많지 않아 어두침침했건만, 버스를 기다리는 대기 장소는 아파트 현관에 들어오는 불같은 전등이 두 개 정도 켜져 있는 것이 전부였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곧 버스 한 대가 어둠을 뚫고 우리 앞에 멈춰 섰다. 버스에서는 40대로 보이는 북한 남녀 한 쌍이 우리를 맞이했다.


“환영합네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네다. 리한길 입네다.” 


대회 기간 내 우리 팀을 담당할 단장이라며 본인을 소개한 남자는 웃는 얼굴로 따듯하게 맞아주었다. 동행을 한 여성은 러시어-조선말 통역관이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번에 벨라루스팀 섭외와 인솔을 맡은 김준우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우리는 버스에 올랐고 대회 기간 숙소인 양각도국제호텔로 향했다.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를 지나고, 뜨문뜨문 가로등과 선전물, 동상들이 창밖으로 보였다.


양각도국제호텔 외관

‘오 생각보다 좋은데?’ 양각도국제호텔에 입구로 들어서자 대리석 바닥과 꽤 현대적인 로비가 나타났다. 긴 비행과 대기로 힘들었던 나는 한시라도 빨리 객실로 올라가 쉬고 싶었다. 재빠르게 선수들과 지도자들에게 방 배정을 해준 뒤 룸메이트인 윌렌과 방에 들어섰다.


평양의 낮과 밤의 모습

호텔 위층 방을 배정받은 우리의 객실은 대동강을 향해 창문이 있는 ‘리버뷰’의 객실이었다. 무난하지만 오래된 벽지와 침대 그리고 인테리어를 무시하고 바로 창문 커튼을 열었을 때 눈앞에는 평양 시내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평양의 야경을 보게 된 나는 생각했다. ‘전력난이 사실이구나.’


북한 대회 주최측에서 나누어준 '손 전화기'


MADE IN 북한 안내 멘트 '미안하지만...' 웃음을 주기 충분하다.

‘별로 볼 게 없네’ 대충 짐을 정리한 후 샤워하며 긴 비행으로 지친 몸을 추슬렀다. 다행히 온수와 수압은 오래된 시설치고는 썩 괜찮았다. 침대에서 다리를 쭉 펴고 누워있던 나는 옆 침대에 있던 윌렌에게 말했다.


“형 할 것도 없는데 내려가서 맥주나 한잔할까요?”


마침 목이 말랐던 우리는 지갑과 핸드폰을 챙겨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에 있는 식당 겸 바에는 협회 사람들과 이번 대회에 후원한 업체들의 관계자들이 각 테이블을 잡고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해외 팀 인원들을 제외한 한국에서 출발한 모든 참가자는 버스를 타고 개성을 통해 육로로 입국했고,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 중 오직 나만 항공을 통해 입국했다. 그리고 육로 입국 시 국경에서 개인 핸드폰을 반납해야 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전부 압수했다고 생각을 했던 것일까, 대회 내내 나는 내 개인 핸드폰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내가 원하는 사진과 영상을 찍어 남길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내가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나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요청했고,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며 보상으로 그들이 사주는 대동강 맥주와 북한의 먹태를 먹을 수 있었다.

북한의 대표 맥주 '대동강 맥주' 보리 함유량에 따라 가운데 번호의 숫자가 달라진다.

저녁 11시쯤 적당히 배를 채운 우리는 다시 객실로 향했다.

그렇게 길었던 하루가, 평양에서의 첫 밤이 흘러갔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2023)



*본 글의 북한말은 실제 워딩과 다를 수 있음

*글에 사용된 사진과 동영상은 모두 직접 촬영한 것으로 허락 없이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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