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국제 대회 마무리 그리고 VIP
조별리그가 끝나고 돌입한 토너먼트부터는 경기장에 관중들의 관람이 허용되었다. 제아무리 국제 경기라고는 하지만 유소년 경기에 김일성 경기장의 총정원인 6만 석이 모두 채워졌다. 많은 경기를 보고 또 현장을 다녔지만 이러한 광경은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와 상대편이 경기 이기면 집에 안 보내려나 보다.' 북한의 4.25 체육단과 평양국제학교 팀을 응원하는 북한 관중들의 차림새는 대부분 하얀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어, 필드 안이나 멀리서 보면 좌석인지 사람인지도 구분하기 힘든 지경이었다.
"이거 다 동원된 관중들 같죠?"
나는 옆에 있던 윌렌에게 관중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관중석에는 평양의 학생들이 많이 보였는데, 학교별로 앉아 준비된 응원과 율동을 하며 서로 대결이라도 하듯 우렁찬 목소리로 북한 팀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강원도 선발팀과의 준결승 경기에 나선 4.25 체육단 선수들의 몸짓하나 하나에 환성과 탄식이 같이 흘러나오며 홈 경기의 이점을 제대로 살리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이라고 선수들이 경기전 필드에서 몸을 풀고 있을 때 우리에게도 익숙한 노래 `반갑습니다`를 합창하며 나름 따듯한 분위기도 연출하고 있었다. 전광판에는 마치 우리가 노래방에서 보듯 노래 가사가 송출되어 모든 관중이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이 노래는 단순히 응원이나 환영의 느낌 외 극적인 연출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15세를 자처(?)하는 흡사 인민군과 같은 북한 선수단은 남한 팀을 가볍게 압도한 후, 경기를 마치고 남한 선수들의 손을 맞잡고 경기장 트랙을 돌며 관중들을 향해서 인사를 했다. 이때 관중들이 부르는 '반갑습니다' 합창은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기 충분했다.
"동포여러분 형제여러분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사실 나는 평소에 통일에 대해 별 다른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어린 선수들을 이용해서 이런 연출은 너무 인위적이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내용이 없는 가사를 듣고 있자니 무언가 서글프고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가사는 괜찮네.'
그리고 마침내 대망의 결승전, 마지막 경기를 남겨 두었을 때 남은 두 팀 모두가 예상한 대로 북한 팀들이었다. 주최국 참가 팀 간의 경기인지라 다소 맥이 빠져있었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축구보다 결승전을 보러 올 북한 측 내빈들이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가한 모든 관계자의 초미의 관심사는 'VIP가 올까?' 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준결승과 결승전부터는 한국과 북한 방송사들이 중계하기 시작했고 이번 대회는 북한에서 개최하는 몇 안 되는 국제 대회였기에 '최고 존엄'의 출현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항상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일까. 축지법도 쓴다는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우리는 본부석에서 결승전 경기를 관전하게 되었다. 결국 대회는 4.25 체육단이 평양국제학교를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고, 우리 벨라루스 살리호르스크 팀은 중국의 베이징 인화보다 한 순위 높은 7위(총 8팀)로 대회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시상식과 마무리 만찬까지 모든 대회 일정을 끝낸 윌렌과 나는 호텔 방에 올라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 있었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우리 둘은 서로 수고했다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불현듯 한 가지 잊고 있었던 생각이 떠올랐고, 나는 윌렌에게 물었다.
"형 저희 내일모레 몇 시 비행기였죠?"
꽤 긴 시간 체류했던 터라, 귀국 항공편의 날짜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미처 시간을 확인하지 못했던 나는 윌렌에게 시간을 확인차 물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응? 무슨 소리야 다들 내일 간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