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을 집어삼키는 마음의 크기는 그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공허함에 잡아먹힐 때 삶은 무너진다. 맥락도 상황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삶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나 자신을 무너뜨리고 싶어 진다. 사랑도 변명도 힘을 주지 않는다. 의지할 그 무언가가 나라는 이유 하나만 있기에 사랑도 변명도 지겹다.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삶은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서서히 무너진다. 그래서 공허도 서서히 내 마음을 갉아먹는다. 채울 수 없기에 덜어낼 수 없기에 괴로워진다. 삶을 산다는 것은 공허로 이루어진 내 마음을 가진 채 몸을 이끌어나가는 것일까. 공허가 만들어진 이유, 채워질 수 없는 이유는 없다. 인간에게 공허는 그 자체로 존재함일 뿐이다.
이 단어에 가장 크게 범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상실함이다. 상실은 내 몸 하나 이끌 수 없게 만든다. 존재함을 부정하고 싶게 만든다. 상실은 공허를 부정하게 만든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공허를 인정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공허를 인정할 수 없게 되면 삶은 무너지기에. 이 무너짐을 상실이 그렇게 만든다. 상실 하나만으로 공허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상실 하나로써 공허를 만들기에 충분하다. 삶 속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실’이라는 단어를 품고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숭고한 일이다. 이별과 죽음. 볼 수 있지만, 보지 못하는 이별과 볼 수 없기에 그리워해야 하는 죽음. 무엇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일들. 상실함을 겪는다는 것은 그래서 힘들지만 숭고하다. 그 과정은 힘든 것이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생의 무계획과 무질서를 배움으로써 현재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기에 그렇다. 우린 가끔씩 지금을 잊는다. 과거를 떠올리고 미래를 꿈꾸느라 현재 내가 자리한 이 시간을 잊곤 한다. 그 빈도가 많아질수록 삶은 허무맹랑한 판타지 소설이 되어버리고 만다. 진실한 내 것이 아닌 꾸며낸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지금을 생각하고 집중한다는 것, 상실의 경험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로 하여금 나의 내면을 채워준다. 상실은 잃는다는 것 그 자체이다.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느라 지금을 살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들에 반성과 성찰을 하게끔 만든다. 물론 후회로 인해 과거의 나 자신을 탓하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보살피다 보면 진실된 지금의 내 시간을 찾을 수 있다.
상실을 겪은 지금, 충분히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그 속에서 억지로 빠져나오지 않아도 된다. 과정을 즐기듯이, 그 과정을 아파하라고 말하고 싶다. 공허함이 마음을 집어삼켜 감정의 피폐함이 나를 갉아먹는다 하여도 어쩔 수 없다. 삶은 그런 것이다. 상실로 인한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때가 되었을 때 그 상실을 나의 밑거름이 되게 할 수 있다. 내면을 채워 더 이상 공허가 나를 갉아먹을 수 없게끔. 상실로 인한 과거와 미래를 마음이 탐하지 않고 지금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스스로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