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수 없는 순간

by 마루


생각이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느낌이 있다. 도저히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이다. 산에서 내려온 물이 어느 지점에서 더 이상 어떠한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는 상황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고인 물은 점차 색이 짙어지고 탁해진다. 계속해서 흐르던 몸짓을 멈추고 웅덩이에서 가만히 있는 물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상태와 비슷하다. 도저히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와 고인 물이 아무 곳에도 흘러갈 수 없을 때.


어딘가로 흘려보내야 할 것 같은 생각, 어딘가로 흘려보내야 할 것 같은 물은 잠시 멈춤으로써 자연스러운 과정을 밝고 있다. 자연스러운 시간과의 마찰이 일어나는 것이다. 정체되어 흐르지 못하는 생각은 어쩌면 자연스럽게 흐르기를 택한 것 같다.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흐르던 물이 웅덩이에 고인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삶에서 유유히 흐르던 생각이 잠시 멈춘 것은 웅덩이에 고인 물과 같다.

웅덩이가 물에게는 쉼터인 것이다. 삶 속에서 흐르던 생각이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것은 지금 그 생각이


웅덩이에 있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하염없이 흐르던 물이 쉬는 것처럼 생각 또한 잠시 멈추는 순간이 있다. 아무런 생각의 방향에도 나아가지 않고 정지한다. 물과 생각은 그렇게 웅덩이의 지점에서 잠시 일체의 흐름이 없는 상태로 고여 있게 된다.


그렇게 생각이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상태에서 사람은 점점 불안함을 느낀다. 막막하고 답답한 기분은 당장 생각의 흐름이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세상에서의 움직임에 적응한 나머지 멈추는 것이 두려워짐에 따라 그럴 수 있다. 그저 잠시 멈추고 고여 있는, 흐르지 않고 정지해 있는 물처럼 생각 또한 잠시 멈출 타이밍이 있는 것이다. 그 시점에 당도한 것을 불안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


고여 있던 물은 언젠가 다시 흘러간다. 웅덩이에서 멈춰 있던 물이 다시금 흘러가는 것처럼 생각 또한 다시 나아간다. 고여 있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잠시 정지한 것은 느린 게 아니다. 시간은 무한히 흐르지만, 그 외에 대다수의 것들은 유한함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린 그 시간에 압도되지 않아야 한다. 인생이 빠르게 흘러가고 시간이 무한히 흘러가더라도 그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는 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을 수 있는 웅덩이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 속에서 잠시 흐르지 않고 멈춤으로써 우리는 유한함의 존재라는 걸 인식하여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




keyword
팔로워 8
매거진의 이전글고립 속에 놓인 패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