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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초대

by 마루


이혼 가정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초등학생일 무렵 부모님의 헤어짐 이후로의 내 삶이 그 전과 큰 변화를 체감한 것은 아니다. 깊숙하면서도 잔잔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삶의 영역에 숨어들어 침투했는지 알 수 없을 뿐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게 전부였다.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다는 것에 이혼과 관련된 내용은 있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관련한 질문을 했다면 난 무어라 답했을까. 그런 적이 없었기에 그저 상상만 해볼 뿐이다.

그 짝꿍을 만나기 전까지 나에게 이혼이란 내게 일어난 하나의 사건, 그리고 그 이후의 일어난 결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부모님이 갈라진 사건, 그리고 부모님이 아닌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는 결과로써 말이다.

고등학생 시절 하루는 자리를 바꾸는 날이 있었다. 난 앉기 싫은 첫째 줄 중간 자리에 걸려버린다. 오른쪽에 앉은 난 왼쪽에 위치한 중앙 자리의 친구와 인사를 나눴다. 어느 날은 그 짝꿍이랑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자신은 아빠랑 같이 산다고 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해서 그런 형태로 살고 있다고. 난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깊은 수영장의 물에서 느껴지는 수압이 나를 정면으로 덮쳐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애는 아무런 일도 아닌 듯, 별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낸 것이다. 나로서는 생각할 수 없던 그 지점을 불현듯 세게 짚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무언가를 의도하지 않은 대화이기에 느끼고 받아들이고 이해한 것을 혼자 굴렸다. 그 순간은 느리지만 강력하게 지나갔다.

난 뜻하지 않은 초대를 받은 것이다. 끄집어낼 수 없는 말이 아닌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짝꿍의 말 한마디로 인해 깨달았다. 어쩌면 생각의 틀이 깨어진다는 건 초대를 받는 일인 것은 아닐까. 살다 보면 마주하는 일련의 일들에 이따금씩 초대를 받으며 나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그날 이후로 난 사건과 결과가 행해진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 짝꿍의 초대를 통해 얻은 시야의 확장은 그 이후로도 계속 지속된 것이다. 한 번 넓혀진 형태는 변형되더라도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날의 찢어짐과 깨어남이 또 다른 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선물 같은 초대에 현재의 지점에서 고마움의 인사를 건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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