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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명 May 11. 2021

와이어, 연결의 미학

고려제강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치에 대하여

-나다움이란?-


나는 언제나 나다움을 중요시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하거나 결정을 내림에 있어 내가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을지, 내가 잘 드러나고 발현될지를 살핀다. 그렇게 내가 가장 재미를 느끼고 진정성을 담아낼 수 있는 행동이 사진이다. 더 나아가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효용과 관계성을 탐구하다 보니 이렇게 여러 공간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감상을 공유하고 있다. 아직 많은 양의 경험치를 쌓진 않았다. 그러나 매번 공간과 관계하며 느끼는 물성이나 가치들을 사진으로 담아내어 한 편의 글로 쓰려는 의지는 나의 일관된 진심이다. 긍정적인 동기와 흥미에 이끌려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나다운 모습을 발견했다는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


한편 나다운 것이 표출될 때 그것은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개성은 나만의 고유한 매력이 된다. 여기에 진정성을 더하면 얄팍한 심리로 누군가의 것을 베끼거나 성숙한 고찰 없이 스쳐 지나가는 것들과는 다른 설득력을 갖추게 된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이목을 끌고 파급력을 갖출 수 있다. 더욱이 오랜 시간을 살아내고 새로운 옷을 입은 경우라면 창의적 가치를 현시대에 전할 교육적 가치까지 담긴다.


바로 오늘 소개할 고려제강과 후에 다룰 F1963의 이야기다. 전체적으로 동일성을 갖는 공간들이며 다루어야 할 이야기들도 많다. 그 시작은 고려제강(KISWIRE)으로부터이며, 최근 방문한 고려제강 기념관에 대한 후기를 바탕으로 천천히 풀어나가 보겠다. 어떠한 고유성과 일관성이 있는지 파악하며 읽어 보시길 권한다.




-간단한 소개-


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위치한 고려제강은 1945년 설립되어 자동차, 교량 등의 산업분야에 쓰이는 특수선재 제품을 생산 및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위의 사진에서 보이듯 가장 메인이 되는 제품은 바로 와이어다. 부산의 광안대교를 비롯해 전국 & 해외의 많은 다리에 고려제강의 와이어 제품이 사용된 바 있다.


고려제강 기념관은 기업 철학과 비전, 문화를 홍보하기 위한 홍보관과 와이어의 역사와 예술적 측면을 강조한 전시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1층에 위치한 홍보관에서는 정보 제공이 메인이 되는 공간이다. 핸드폰에 오디오 가이드 앱을 설치하면 각 전시 파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참고하기에 용이하다.


고려제강의 제품이 사용된 다리들의 모형이다

1층에서 전달하는 정보들을 습득하였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동선이 시작된다. 건축적 구조감이 주는 특별한 경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콘크리트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고, 계단의 양쪽에는 와이어를 사용해 고려제강의 정체성을 더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쭉 이어진 선들을 따라 시선과 동선을 같이 옮겨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미묘한 복선-


그리고 계단의 왼쪽으로는 촘촘한 와이어들 너머로 개방된 야외 공연장을 볼 수 있다. 분명히 보이는 곳이지만 설치된 와이어들에 의해 직관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시각을 방해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묘한 신비감과 다음 펼쳐질 공간에 대한 복선을 제공하는 느낌이었다. 한 번에 모든 풍경을 보여주는 대신 걸음을 옮김에 따라 숨겨진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하는 건축적 어법이다. 상당히 신경 써서 만들어진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 첫 번째 포인트였다.


아니나 다를까 고려제강 기념관은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으로 2014년 부산다운건축상 대상을 받은 이력이 있었다. 기둥과 보가 없이 28개의 와이어만으로 지붕을 지탱하도록 설계되었다. 오직 와이어만으로 지붕과 건물의 무게를 분산하여 지면으로 보내기 위해 철저한 공학적 계산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총 1919m 길이의 와이어가 쓰였다고도 한다. 맨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건물 외벽에 대각선으로 설치된 와이어는 아마 기둥의 역할을 하기 위한 용도였을 것이다.



계단을 다 오르고 난 뒤 왼쪽으로 돌아 나오면 위의 사진과 같은 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돌아 나오기 전의 지점으로 돌아와 올라왔던 계단으로 1층 쪽을 바라보면 새로운 뷰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정사각형으로 보이는 유리 없는 창을 내어 바깥에 있는 나무를 보이게 하였고, 안쪽 벽면에는 담쟁이류의 식물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통해 자연과의 연결성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와이어와 노출 콘크리트가 주 재료가 되기 때문에 시크하고 삭막한 인상의 건물이 될 수 있었지만 식물의 생명력을 더하여 성공적인 변주를 거두었다. 벽의 높이와 넓은 면적 덕분에 둘러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둘러싸이는 공간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작지 않은 크기의 창들을 통해 바깥의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건물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연결의 미학-


대각선과 수직 간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인다. 와이어가 기둥의 역할을 대체해야 하기에 흔히 볼 수 없는 구조의 벽면이 설계된 것이라 추측해본다. 또한 윗창은 자연광을 받아들여 어두운 분위기를 밝히고 노출 콘크리트의 질감을 살려주는 일석이조의 역할을 한다. 바닥에 깔린 식물과 빛이 들어오는 천장을 통해 앞서 보았던 공간과 같은 통일성이 보인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인공물(콘크리트와 철)과 자연물(식물)의 연결, 열어놓음을 통한 외부와 내부의 연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조병수 건축가는 와이어의 대표적 기능인 '연결성'을 고려제강 기념관의 건축적 요소들을 통해 우리에게 완곡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노련하고도 완벽한 건축적 표현에서 나는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연결성은 다음 글부터 다루게 될 F1963에서도 일맥이 상통하게 된다. 그러니 어찌 매력적이지 않은 공간일 수 있겠는가!


이어서 독특한 분위기가 조성된 복도를 따라 2층 전시관으로 이동한다.


기업의 핵심 가치와 비전에 관련된 단어들이다

-경험하는 2층-


1층에서는 회사와 관련된 정보들을 습득하는 공간이었다면 2층은 정보와 지식을 경험하는 곳이다. 와이어의 역사와 제작 공정, 산업별 쓰임 등 와이어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영상, 모형, 키오스크 등의 컨텐츠로 구성해놓았다. 그리고 공간의 가운데에서 출발하는 나선형의 다리를 통해 외부 정원으로 나갈 수 있다.



전체적인 공간을 넓게 활용하여 여유롭게 걸어 다니면서 다양한 전시물들을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다.


3층 정원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있었으나 방문 당시 길이 막혀있어 미처 감상하지 못했다.

-색다른 매력-


반면 2층 전시실 왼쪽 벽면의 아래에서 새어 나오는 다양한 색깔의 빛이 시선을 휘어잡는다. 일반적인 눈높이의 창을 내는 대신 아래쪽으로 눈길이 가게 하여 외부 중정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준다. 또한 보는 위치에 따라 자갈들의 모습과 전체 구도가 자연스럽게 변하여 사진을 찍기에도 좋은 포인트가 된다.



비록 외부 중정을 방문하지 못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와이어를 중심으로 풀어낸 건축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고려제강은 와이어라는 제품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물리적인 연결을 제공하고, 기념관 건축을 통해서는 연결성이라는 가치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사람과 사람, 세상과 세상을 잇는 매개체의 속성을 건축적으로 훌륭하게 풀어낸 사례가 되겠다. 나아가 이러한 가치를 스스로의 성찰에 대한 소재로 쓸 수도 있겠다. 나의 삶은 무엇과,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나에게 연결이란 어떠한 의미인가? 


다음 글에서는 고려제강의 공장을 개조하여 상업 &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킨 F1963과 그 안의 여러 공간들에 담긴 가치를 공유하여 보겠다. 기대해주시라!


**기념관 가까이에 코스트코가 위치해 있다. 여행자의 입장이든 주민의 입장이든 겸하여 방문하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기념관은 사전예약제를 통해 운영되니 이 점 잊지 마시고 즐거운 방문을 해보시길 바란다.



장소: 고려제강 기념관(KISWIRE Center) 

주소: 산 수영구 구락로 141번 길 63

운영시간 : 화~토 오전 10시 - 오후 6시(휴관일 월요일, 일요일, 공휴일)

관람안내 : 홈페이지 경유 사전예약제(10시, 14시, 16시)

이용요금 : 무료 관람

관람대상 : 만 13세 이상(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는 보호자 동반 하에 입장 가능)

문의전화 : 051-760-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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