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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명 Jun 02. 2021

1963년으로부터의 온고지신 -4

테라로사의 다양한 변주

키스와이어센터부터 시작된 공간 탐색 여정의 마지막 기록이다. 와이어라는 소재를 건축에 창의적으로 사용하고 심층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의도가 F1963의 각 공간들 전반에 다채롭게 표현되고 있다. 실질적 기능인 물리적 연결을 넘어 시공간적 연결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확장적 가치와 온고지신을 적용한 공간 철학이 더해져 고유한 개성이 드러날 수 있었다.


본래의 생산적 기능이 다 했다고 하여 그 물건의 수명이 끝난 것은 아닐지 모른다. 바라보는 시각을 전환시켜 물건의 심미성을 새롭게 발견하거나 현재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언제든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창조적인 내일을 만드는 방법 중 하나는 오랜 역사에 오늘의 숨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테라로사는 성공적인 공간 변화를 이끌어내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내에 많은 지점을 운영 중이고 획일화되지 않은 컨셉과 인지도를 자랑하는 테라로사 카페, F1963점은 방문했던 그 어떤 카페보다 규모가 거대했다. 그만큼 많은 변주를 볼 수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기존 공장의 오래된 철판을 재사용한 커피 바와 테이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발전기와 보빈이 그대로 존재감을 보이고 있었다. 과거엔 산업발전의 동력이 되며 한국 경제에 숨을 불어넣는 공장으로서의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그 흔적을 고스란히 활용하여 고유한 물성과 감성이라는 새 옷을 입고 사람들을 맞이하는 공간이 되었다.


와이어로 시작하는 카페


낡은 철판의 간판을 위로하며 들어서는 순간 역동적으로 공간을 가로지르는 와이어가 우리를 맞이한다.

와이어를 관통하는 조명 덕분에 대비가 명확한 인상을 갖게 된다. 그리고 구석에 위치한 손몽주 작가의 와이어 설치예술 작품 역시 인테리어 컨셉과의 통일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가 된다.


손몽주 작가의 와이어를 이용한 설치예술 작품이 우리를 먼저 반긴다.

독특한 시각성


입구에서 들어서고 난 후 바로 매장 중심 공간에 다다르거나 카운터가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공장 전체를 그대로 활용하다 보니 복도를 따라 조금 더 걸어 들어가야 한다. 왼쪽의 통창으로는 자연광이 들어와 내부를 비춘다. 벽면과 기물들의 빈티지한 질감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통창의 바로 옆에는 거대한 로스팅기와 각종 기계들, 테이블과 의자도 보인다. 부피가 큰 물건들은 넓은 공간감을 더욱 효과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래서인지 상업적인 카페보다는 하나의 전시장에 온 듯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넓은 곳에 배치된 낡은 것들에서 날 것의 뉘앙스가 전해진다.

하지만 앞서 보았던 사진들은 공간의 초입, 즉 1/3 지점을 담았을 뿐이다.

이제부터 매장 중심 내부를 본격적으로 둘러보도록 하자.


다양한 산지에서 생산된 커피와 천연발효빵은 공간 감상에 맛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전체적으로 넓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고 볼거리가 많아 심심하지 않은 공간이다.


거대하고 오래된 모습의 보빈과 철제 테이블이 지금은 볼 수 없는 과거 공장의 모습을 새로이 재현하고 있다.

무언가를 다시 쓴다는 것은 비용적인 측면에서나 창의적인 발상에서나 확실히 도움이 될만한 일이다.


그리고 필자가 흥미롭게 보았던 부분은 천장이다. 채도가 낮은 초록색의 나무, 인테리어적 요소가 담긴 와이어를 지탱해주는 주황색 철제 구조물, 빨간색 긴 파이프들이 흔하게 볼 수 없는 색감 조합과 형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다른 카페에는 없는 이 곳만의 이색적인 정체성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길게 이어진 철제 테이블은 많은 인원이 수용 가능하며, 앞에 놓여 있는 책들을 구경하거나 본인에게 필요한 공부와 업무 등을 여유롭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특히 테이블 위의 책들이 흥미로운데, 중구난방 하지 않고 같은 색감끼리 분류 배치하였다. 인테리어의 디자인적 요소로 충분히 고려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복되지 않는 기물들이 다양함을 만들어낸다.


앞서 긴 타원형의 모양으로 연결된 철제 테이블이 여기서도 동일하게 사용된다.

공간을 가로지르며 땅에 박혀있는 듯 솟아나 있는 듯 묘한 안정감과 곡선이 돋보인다.



지금까지는 2/3에 해당하는 공간을 둘러보았다. 입구 초반에는 넓은 복도와 큼직한 기계들이 돋보였고, 중심에는 독특한 천장과 철제 테이블 등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기물 연출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안쪽을 들여다보면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공간들이 있는데, 중심에 밀집된 인파와의 거리가 있는 덕에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주목할만한 요소가 더해진다. 페인트 칠의 구도이다. 넓은 벽면에 칠해진 구획의 분포가 감각적인 구도를 만들어 낸다. 배치된 가구와 기물들의 색감에 맞추어 같이 어우러지니 마치 앤티크 가구 갤러리에 있는 듯하다. 초, 중반부의 공간 컨셉에 이어 추가된 또 하나의 변주인 것이다.


낡은 기물에 젊은 감성의 페인트칠이 적절한 온도감으로 어우러진다.

시각의 전환과 재발견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게 만드는 공간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선명한 경험으로 자리 잡는다. 공간을 결합하고 창조하는 관점에서도 사회문화에 전파되는 영양가는 무척이나 높을 것이라 사료된다.


더 나아가 무언가를 잊지 않고 간직하며 존중한다는 생각은 비단 건축에만 적용되는 교훈은 아닐 것이다.

공간이 제시하는 연결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우리의 삶 저변에 적용되고 인식의 성장으로 이어질 때, 공간을 방문하고 관계해보는 일은 지식의 확장과 마음의 감동을 융합한 새로운 경험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우리의 일상과 맞닿은 공간이 얼마나 많은 매력을 표출할 수 있고 또 중요한 가치를 담을 수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F1963과 고려제강의 비전을 만나보았다. 풍부한 경험을 이 글을 통해 풀어내고 공유할 수 있어 기쁜 마음이었고 이상으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부산 수영구의 명물을 꼭 방문해보시라!



장소: 테라로사 / 카페

주소: 부산시 수영구 구락로 123번 길 20, F1963 내

운영시간 : 매일 9:00 - 21:00 (라스트 오더 20:30)

주차 : 비엔날레 주차장, 3시간 무료주차(영수증 지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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