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소개한 365일장이 일상과 가까운 공개 플랫폼이었다면, 이어서 반전되는 공간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건물의 4층에 오르면 발견하게 되는 장소의 이름은 히든 아워(hidden hour), 즉 숨겨진 시간이다.
색깔의 복선
빛과 색이라는 것은 주변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변화시켜 우리를 압도할 수 있는 요소이다. 히든아워는 이러한 속성을 잘 이용했다. 1층의 365일장을 대표하던 초록색에서 계단을 오름에 따라 점차 빨간색, 주황색으로 변하는 색채의 변주를 목격한다. 등장할 공간의 특성을 암시하는 듯한 색채의 사용이다.
좁은 계단이 주는 제한적인 시야는 어디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특히 천장을 뚫어 계단을 설치하고, 거친 벽면을 노출시켜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질감을 더했다.
비일상으로의 전환
광장시장에 있는 공간이라고 믿기 힘든 감각의 내부 인테리어이다. 물론 성수, 을지로, 문래 등 낡은 것에 새로움을 입히는 시도는 많다. 그러나 활기찬 시장의 이미지가 본 장소의 것과 워낙 다르기에 이러한 대비에서 느껴지는 충격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높은 천장, 커다란 원형 테이블, 바닥재의 독특한 조합, 내부로 향하는 계단 등 디자인된 요소들이 복합적이지만 비슷한 톤을 유지하며 조화로운 구성을 이룬다. 건물 1층의 식료품점부터 4층의 와인바에 이르는 서사의 반전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대목이다. 또한 흔히 말하는 시장통의 분위기에서 독창적인 공간으로 시선이 전환되는 것은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떠나는 비(非) 일상의 체험이 되는 듯하다. 여기서 비일상의 의미란 흔하지 않고 무언가 특별한 것에서 오는 귀한 감상일 것이다. 숨겨진(hidden)이라는 작명이 이토록 적절한 경우가 또 있을까? 이것이 히든아워가 갖춘 공간적 어법이다.
입구의 왼편에는 커다란 통창으로 주위 건물들과 종로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볼 수 있다. 특히 창 밖의 풍경과 내부의 디자인은 서로 이질적이지 않다. 종로 지역 특유의 예스러움과 공업용 자재들의 특징을 디자인에 반영 및 재해석한 의도로 보인다. 히든아워가 위치할 지역적 특색을 고려하고 수용한 것이다. 또한 창을 등지고 앉으면 자연광을 받는 내부 모습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창 밖을 바라보는 것 이외의 시각적 흥미 요소이다. 이러한 포인트를 즐기고 싶다면 해질 녘 시간대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전체적인 분위기 속 선연히 드러나는 개성은 바로 재질이다. 천장엔 보통 마감처리로 보이지 않을 철근과 콘크리트의 외형을 드러나게 했다. 바닥에는 벽돌과 에폭시*를 사용하여 변주를 주었는데, 특히 조각조각 보이는 파편들은 공사 후 남은 쓰레기들을 재활용한 것이다. 자원의 낭비를 시각적 예술로 변모시키는 선택이다. 주어진 역할을 다하여 버려지는 물건들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것에서 현명함을 느낀다. 그리고 벽면의 거울은 이러한 퍼포먼스를 부분적으로 비추고 감추기도 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인테리어 요소들 곳곳에 숨김과 드러냄의 표현이 은근하게 묻어난다. (*에폭시: 접착, 코팅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액체)
역광에 드러나는 공간의 질감
내부 공간은 사진에서 보이는 만큼 밝지 않다. 자연광이 닿지 않아 매우 어두운 편이다.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빛을 제공하는 조명은 기물의 선을 은은하게 비춘다. 특히 와인잔을 조명에 비추면 드러나는 투명함과 역광이 만들어내는 대비가 아름답다. 앞서 둘러본 넓은 공간에서 볼 수 없던 인공광의 연출이 특유의 감상을 더한다.
사실 실내 공간 정도만 보아도 충분히 인상적인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히든아워는 루프탑을 마련해 놓았고, 그를 향해 올라가는 짧은 여정을 제공한다. 종로 5가의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이곳은 광장시장 옥상의 일부이다. 키 낮은 옛 건물 하나를 방문하는 일이 이토록 다양한 시점에서 시야를 확보하는 경험이 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장 위에서 도심을 바라보는 상상 혹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다수의 인원이 함께 이용하기에 좋다
게임의 번외 편이나 영화의 쿠키 영상과 같이 스토리의 끝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지막 즐길거리가 숨겨져 있다. 양파를 깔수록 새로운 겹이 나오듯 히든 아워 속엔 또 하나의 히든 룸이 존재한다. 앞서 초록색 - 빨간색 - 주황색을 잇는 변화의 연장선을 푸른색으로 마무리한다. 물의 공간을 구현한 듯 낯선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연출은 우리의 감상을 수면 아래로 깊고 차분하게 끌어내린다.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자세(365일장)와 장소적은밀함(히든아워)을 동시에 전달하는 플랫폼의 양면성이 흥미롭다.일상의 반전이 주는 특별한시간과 감각적 경험을 이곳에서 발견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