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 등 전통시장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인 일장, 최근 이를 사용한 적이 있던가? 거의 그렇지 않다. 특히 도심에서 살아가는 경우 해당 개념을 생각해볼 기회는 적은 편이다. 주위에서 운영되는 연중무휴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와는 매우 다른 운영방식을 취하고 그 모습을 찾아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형 상권들이 주류를 이루기 전 과거 농경사회에서 주로 성행하던 일장은 낮은 인구밀도와 교통의 불편을 극복하기 위한 정기적 상행위였다. 이러한 정기시장은 당대 중요한 경제활동이자 교류의 장이었다. 사람들을 모으고 교류시킴으로써 지역문화가 오가고 공동체의 결속을 이룬 것이다. 현재에도 이러한 사회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속적으로 정기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마디로 '일장'이란 것은 경제적 & 공동체적 의식 함양의 방법인 것이다.
또한 시장의 특징들 중 하나로써 거리가 있다. 비릿한 생선 냄새부터 고소한 기름 냄새까지 재료 원물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상품과 소비자 간의 거리가 가까운 곳이다. 저렴한 가격대의 매력 역시 존재한다. 특히 대화를 통한 흥정과 음식을 사서 먹는 행위들 역시 시장에서 일어나는 활동이다. 손을 통해 물건을 주고받음으로써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유대가 발생하는 것이다.
도시발전의 흐름에 따라 식당, 식료품점, 반찬가게 등은 야외에서 실내 공간으로 들어가는 양상을 보인다. 몇몇 신축 아파트의 경우 생활권을 단지 내에서 해결하도록 설계된다. 집에서 먼 시장까지 이동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온라인 쇼핑 시장이 커지며 전통시장은 축소와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누군가의 어릴 적 추억이 담긴 향수의 공간이자 기성세대 및 노년층의 생활과 밀접히 관계하는 시장의 현재 상황이다.
365일장
종로 5가에 위치한 광장시장, 육회와 파전 등의 먹거리가 대표적으로 연상되는 곳이다. 밀집된 인파와 상점들 사이로 빛나는 초록색 간판이 눈에 띈다. 과거 김치버스 사업으로 한국의 식문화를 알린 류시형 총괄을 필두로 한 321 플랫폼의 사업장이다. 익숙한 시장 골목 사이 새로운 움직임을 창조하려는 의지를 담은 이곳은 식료품점이자 편집샵의 성격을 갖는다. 광장시장 내 상인 및 전국의 다양한 제품들을 모으는 전략을 취한다.
순전히 '먹음'이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인 시장에 가려진 상품들을 발굴하고, 주류와 음식의 조화를 권하며, 관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전한다. 또한 도·소매적 단순 판매를 넘어 브랜드 간 융합을 추구하기에 제품 공모전 등의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한다. 사람 냄새가 오가는 시장 한복판에서 현대적인 감각과 사업 색깔로 경계를 넓혀나가는 플랫폼이다. 식료품점의 정체성은 유지하되 시장에서 먹거리를 파는 일반적 이미지를 탈피했다. 시장과의 공생을 기반으로 새로운 채널을 구축하고 알리려는 창의적인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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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장은 앞·뒷건물 두 개를 하나로 합쳐 확보된 넓은 내부 공간을 보여준다. 특히 매장 앞 통로의 비좁음을 극복하고자 입구를 보다 안쪽에 마련했다. 작은 테라스 같은 면적이 확보되면서 방문객에게 물리적ㆍ심리적 여유를 제공한다. 팝업 행사 진행 및 쇼윈도의 역할로써도 용이한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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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메뉴들은 시장에서 즐길 수 있는 간단한 먹거리들을 표방했다. 반면 프랑스, 베트남 등의 색깔을 가져와 이국적인 매력을 첨가했다. 광장시장의 이미지를 살린 맥주나 와인과 함께 곁들여도 좋을 듯하다.
365일장의 차별화는 사업 방향뿐만 아니라 공간의 시각성에서도 그 빛을 발한다. 주변 상점들이 언젠가 변모해야 한다면 좋은 참고가 될만한 내부 인테리어가 그러하다. 밟은 조도와 깔끔한 구조가 명랑한 첫인상을 심어준다. 초록과 베이지를 사용한 배색과 분할이 명확하다. 특히 건물의 골조와 철제 기둥을 그대로 활용하여 오랜 건물의 일부를 기억했다. 새로운 감각을 덧칠하는 요즘의 리모델링 방식 중 하나이다.
(좌) 바닷가의 유리 조각을 모티브 삼은 비누 브랜드
전통주와 와인(레드, 화이트, 내추럴)이 소개된 코너 주변에는 치즈, 샤퀴테리, 김부각 등의 제품들이 있다. 조화로운 페어링을 선사할 먹거리들이다. 특히 자개 기술자와 협업하여 만든 와인 오프너는 광장시장의 숨겨진 기술과 제품을 발굴한 열정의 증거이기도 하다. 아래 사진의 맥주는 국내 크래프트 브루어리와의 콜라보 제품으로 광장시장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브랜드 간 융합으로 탄생한 창의적 제품들이 365일장이라는 열린 장터에 놓이고 전달된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거리를 친밀하게 좁힐 수 있다. 손을 통해 오가는 공동체적 유대의 과정을 365일장은 재해석한 것이고, 물건을 통한 교류가 그 시작이 된다.
참신한 시장의 시작을 알리는 365일장은 사실 절반의 경험이다. 1층에서 사람들을 모으는 열린 자세와 달리 숨겨놓은 여로를 따라 이동해야만 드러나는 공간이 본 건물의 4층에 위치해있다. 흥미롭게 반전되는 플랫폼의 서사를 다음 글에서 주목하여 온전한 경험을 완성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