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날이 좋아서, 혹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집은 쓸쓸해서, 때로는 마음이 깊어지는 누군가와의 통화를 위해서 최소한의 짐만 챙겨 들고 밖으로 걷는다. 새벽 한 시였다. 나는 동전을 탈탈 털어서 빌라를 나왔다. 마실 거리라도 사들고 한 모금씩 적시면서 걸을 생각이었다. 글이 써지지 않았고, 뒤엉킨 생각들이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바깥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26도까지 치솟던 낮과는 정반대의 기온이었다. 봄은 까다롭구나, 추운데 그냥 들어갈까, 이렇게 머릿속으로 툴툴대며 집 앞 편의점에서 초코우유를 하나 샀다. 가방 속을 정신없이 휘젓던 소위 짤짤이들을 정리하니 걸을 마음이 다시 생기는 것도 같았다. 너무 멀리 가지만 않는다면 나름 견딜만한 추위였다. 도로의 벚나무 잎들이 푸르게 밤을 빛내고 있었다.
4월의 봄은 봄으로서 절정이다. 헤일 수 없는 이름의 꽃들이 앞다투어 개화하고 앞다투어 떨어진다. 나무의 잎들은 겨울이 언제였냐는 듯 비어있던 가지 사이를 제법 풍성하게 채운다. 그러나 봄은 한편으로는 무척 불안정하다. 어떤 때는 슬리퍼 바람에 산책하기 딱 좋을 정도로 선선하다가, 때로는 따뜻하다가, 낮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날 정도로 후텁지근하다가, 자정이 넘어가는 밤이면 외투 없이는 몸을 떨어야 할 정도로 추워진다.
초코우유가 비워지고 빨대가 기포를 빨아올리기 시작했을 때쯤, 봄의 추위와 나의 고민들이 서로 만났다. 휑한 밤의 거리에 도열한 가로수들의 소실점을 바라보며 나는 떠올려냈다. 어쩌면 나도 이 봄과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어떤 때는 삶이 희망과 긍정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가, 먼발치에서 혼자 사랑하다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면 스스로에게 화도 나다가, 문득 올려다보면 아득히 먼 것만 같은 미래에 막막해져서 두려워지는 순간도 있다. 봄에게는 한 가지의 모습만 있지 않을 것이다. 봄이 어떤 모습을 간직하고 있든 봄은 봄이다. 어쨌든 봄이 찾아오면 아직 가시지 않은 겨울 추위에도 꽃은 피어날 것이고, 꽃이 떨어지고 잎이 무성해지면 여름의 열정이 세상을 한차례 달굴 것이다. 그리고 봄을 무사히 지나쳐 온다면 반드시, 결실의 계절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있다.
나의 봄은 이렇게 찾아왔다. 손가락이 시려오는 밤의 추위에도 나는 거리를 걷는다. 사유하기 위해, 쓰기 위해 걷는다. 추위가 더해져 눈발이 흩날리게 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것은 나의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