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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로나 Jun 06. 2021

일요일 저녁이 두렵지 않아요

일요일 저녁. 산책, 외식, 아이들 목욕까지 다 마쳤다.


난 노트북, 남편은 모자란 잠 보충, 채민은 TV에 DVD 연결해서 토마스를 보고 있고, 다민은 휴대용 DVD 플레이어로 식탁에 앉아 있다.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런 날도 나에게 오는구나! 감격스럽다. 한동안 초고 쓴다고 루틴을 미뤄두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걸린 독서! 자리 잡고 앉아서 김진애 박사님 책을 읽는 중이었다. 플레이리스트를 듣다가 갑자기 브런치에 한 편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럴 때 써야지. 지금을 넘기면 또 언제 쓸지 기약 없다. 다시 루틴을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에. 브런치의 루틴이여 돌아오라!!!     


결혼 전, 직장인이었을때는  일요일 저녁은 피하고만 싶은 시간이다. 나의 일주일이 어떻게 펼쳐질지 안 봐도 뻔하니 말이다. 종일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날씨는 좋기만 한데 약속도 없고 재미난 일도 없고.... 늦은 오후의 햇살은 나를 더 초라하게만 한다. 베프에게 연락해본다. 만나자고.   

   

“맥주나 마시자. 거기로 와.”


우린 주중 퇴근 시간에도 만나서 별 소득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내 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베프. 주말이라고 넘어갈 수야 없지. 서로 비슷한 신세를 털어놓으며, 며칠 전 주고받은 이야기와 다를 게 없는 이야기에 열변을 토한다. 맥주는 맛있기만 하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현재와 미래는 없다. 추억만을 곱씹으며 일요일 저녁의 불안함을 달래 본다.      


“내일 출근해야 되니까 이만 가자.”     

못다 한 이야기는 주중 퇴근 이후가 있잖아. 하하. 집에 와서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며 애써 내일을 외면하며 일요일 저녁을 보냈다.


요즘 유튜브 피식 대학에 빠졌다. 05학번의 이야기로, 그 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재연한 콘텐츠다. 잊고 있던 그때의 우리다. 불안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고민은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싶지는 않았다. 매일 같은 레퍼토리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도 즐겁기만 했다. 그때가 미치도록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취업, 결혼, 출산의 터널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건 두렵기 때문이다. 분명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에 집중할 수 있으리라. 그때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거울 삼아 지금을 더 열심히 살아보려는 의욕도 있다.      


솔직히 이제는 일요일 저녁이 기다려진다. 내일 남편과 아이들은 본인들의 자리로 돌아갈 테니. 난 한숨 돌릴 수 있으니까. 온전히 나의 루틴을 다시 찾을 수 있으니까.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의 무게가 무겁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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