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오는날이면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by 지구별여행자

처마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렇게나 좋던 날들이 있었다.

그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가슴이 뛰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 지는 그런 날.

비가 오기 전날부터 하늘이 어둑어둑 해지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설레었다. 그러다 비가 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하는 거였다. 비가 오면 나는 글을 쓰는 일도 더 잘 되고, 우울하던 기분도 되려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도 비가 오면 전화를 해서 밖에 비 온다고 알려 줄 정도였다.


서로 사랑을 하다가 죽고 못 산다고 하다가 헤어지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상처로 트라우마로 남아

다시는 사랑 따위는 하지 말아야지 생각할 때가 있다. 또 누군가는 정말 상대방을 사랑해서 놓아준다는

구차한 변명을 이유로 헤어짐을 통보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전자는 아마도 사랑을 통보받은 쪽일 테고 후자는

이별을 통보한 쪽이겠지.


어떤 쪽이든, 나는. 이별은 아픈 거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은 둘이 시작해서 하는 건데 어찌 이별은 혼자서 시작해야 하는 건지 그 단어조차도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별이라는 것이 꼭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의 그 이별만이 아닌, 친구들 사이에서 가족들 사이에서도 이별이라는 단어는 늘 존재한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늘 그렇듯, 준비된 이별이라고 해서 덜 아프고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라고 해서 더 아픈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준비된 이별은 그 이별대로,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그 이별대로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에겐

그냥 그 상태로 아픈 것이다.

20대 중반의 시절, 첫 연애에서의 이별은 아니, 그 친구와의 짧았던 6개월간의 연애 동안 작가 생활을 하느라

얼굴을 보며 데이트를 한 것이 총 네 번 정도밖에 되지 않은 날들. 그중 두 번이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비가 오는 것은 좋아했지만 비 오는 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던 내가 그 두 번 마저도 약속을 취소했더라면 그 기억도 추억이 되지 않을 뻔했다.


두 번째 만나던 날, 그 친구가 비에 젖은 꽃다발을 건네주며 무척이나 설레어하던 발그스레했던 얼굴이 비가 오는 날이면 종종 생각나듯.

바쁜 내 일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얼굴을 자주 볼 수 없는데 사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이별을 문자로 통보해 오던 그날 내리던 비도. 그 순간에 함께였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던지.


나는 붙잡지 못했다. 그 이별 통보의 문자에도 답장 한통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난 뒤,

전화를 해오던 그 친구의 전화를 받지 못한 나는 그 순간마저도 장마가 시작되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비가 내리는걸

창밖으로 봤었다. 지금도 비가 내린다. 그런데 지금의 하늘이 그날 그때의 하늘색과 너무나 똑같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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