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도 괜찮아

내속도와 내 걸음걸이로 나답게

by 지구별여행자

무기력하게 한참을 어둠 속을 걷듯 헤매던 올해.

정신을 차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갖던 사람이 별안간 양송이버섯 농사를 짓는다고

맨땅에 헤딩해서 보내온 지난 8년이 고스란히 온몸의 기를 빼앗아 가버려 주저앉혔다는 핑계였으니까.

나는 어쩌면 그 터널을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이 어둠 속을 내달리고 있을 때,

코로나 19가 덮쳤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농사에서 손을 떼게 되는 일을 맞이했다.

딸아이는 원격수업을 하게 되었고

모든 만남은 마비된 채, 시간이 흘러갔다.

계절은 소리 없이 바뀌고 있는데 나만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는 이런 나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온몸의 기를 누군가 빨대를 꽂아 쭉----빨아들인 것 마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모든 상황들이 이렇게 최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싶게 어려워졌을 때,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 왜 그러고 가만히 있어? 너는 글도 쓸 줄 알면서?"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글?! 이제 와서 내가 글을 쓸 수 있다고? 글을 쓰라고?

어떻게?! 너무 손 놓은 지 오래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인데?!

스스로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하기는, 처음 글을 쓰겠다고 덤벼들었던 20대의 패기 넘치던 때를 생각하면

못할 일도 아니지만 너무 오래 글과는 멀어져 있던 터라 헛웃음만 나왔다.

농사를 짓는다고 서울에서 시골로 거쳐를 옮겨오며 나는 많은 것들과 등을 돌렸었다.

사회생활로 맺어진 인연들, 친구들, 선후배들, 모든 인간관계부터 정리했었다.

그런 내가, 지금에 와서 글을 쓴다고 하면 다들 농사하다 잘못된 거냐며 수군거리지 않을까? 하는

지레짐작이 낳은 슬픈 스토리마저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집어넣어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선택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나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택만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선택을 했을 땐 그 선택에 나 자신만의 책임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분신처럼 따라다니는 아이에 대한 묵직한 책임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 책임이라는 무게의 이름으로 다시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살기 위해 쓰는 건지, 쓰기 위해 사는 건지 아직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처음부터 원했던 나의 삶. 그 모습을 이제라도 나는 찾아가고 싶은 것뿐이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목적지만은 분명하게 찾아가는 시간들.

마흔.

나는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다고 스스로에게 이유를 던졌다.

천천히 가보자고, 가다가 힘들면 쉬기도 하고, 넘어지면 일어서기도 하면서

그렇게 내 속도에 맞는 내 걸음걸이로 시작해보자고 마음먹기까지

무던히도 바보같았다. 정말.

가보자. 그 끝이 희망이든, 절망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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