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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지만 분명했던 그때
선택의 여지가 아닌 똑 부러진 선택
by
지구별여행자
Dec 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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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사공이 많아 배는 산으로 향했고, 2012년 등 떠밀리듯 시작한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온전히 부부 두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함께 시작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었다.
마마보이는 안된다는 사람들의 말이 무색하게 그는 할머니 보이였고
부부의 문제든 집안의 문제든 무조건 할머니부터 찾고 보는 사람이었으니,
나는 남편이라는 사람을 의지하고 살아야지 했던 마음마저도 그 자리에서 구겨 넣어버렸다.
마치 다 쓴 종이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듯 어쩌면 그때 나는 남편이라는 존재를 그렇게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지도 않았던 결혼 한 달여 만의 새 생명의 소식은 지금 예쁘게 커가는 아이를 생각하면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 끝났구나 싶은 마음마저 들게 했던 사람, 전남편이라는 아이의 생물학적 아빠라는
존재였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산다는 것이 어쩌면 서로를 가엽게 여기며 여생을 보내는 친구 같은 존재들이라는데
우리는 서로의 영혼마저 갉아먹는 앙숙 아닌 악연이라는 탈을 뒤집어쓴 채,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문제를 방치한 채 하루 종일 몸이 시키는 대로 시간을 보냈으니
내 눈치를 보느라 스스로가 괴로웠을 거고
나는 점점 무거워지는 몸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날도 장마기간이라 부슬부슬 비가 오던 그런 날.
우유를 사러 나가는 나를 졸래졸래 따라 나와서는 과자 한 봉지 부탁한다며 뒤통수에 대고 소릴 질러대는데
그게 화살처럼 진짜 머리에 꽂혀서 뒤돌아서게 했다.
대문 앞에서 언성을 높이다가 돌아서는 내 머리채를 휘어잡던 그 손목을 잡아 꺾는 내 모습에서
나도 모르는 괴력을 발견하고는 아. 나는 여자가 아닌 엄마구나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으니까.
그렇게 선택은 분명해졌다.
살아야지. 어떻게든 살아내야지가 아닌, 벗어나아야지 어떻게든 벗어나야지로.
아이가 11월 생이니, 딱 이맘때였던 것 같다.
나는 출산 가방이 아닌, 버릴 것을 버리고 남편을 떠나 나올 짐을 싸고 있었으니.
경제력이 여의치 않아 변변한 아이 내복 하나 준비해주지 못한 못난 엄마였지만
무기력함에 가정에 대한 책임감 조차 없었던 그런 아빠 밑에서 그런 아빠와 매번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아이를 위한 나를 위한 최선이었다고 기억하고 싶은 그 해 겨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그때는.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했지만
결국은 그때의 선택은 아이와 내 인생을 위한 분명한 선택이었음을 나는 안다.
곧 다가올 아이의 생일.
꼭 이맘때가 되면 나는 아직도 그날의 차갑고 기막혔던 공기에 사로잡힌다.
잘 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하고 자축하면서!
그리고 아이가
아홉 살의 막을 내리는 2020년 생일.
그리고 열 살을 시작하는 2021년 우리 행복하자라고 쓰고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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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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