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밥과 고추잎무침
초등학교 때 여름방학이면 사촌들과 함께 시골에 내려가 한 달씩 지내곤 했다. 내리쬐는 햇볕에 살갗이 타들어 가는 줄 모르고 맨발로 논두렁 밭두렁 뛰어다녔는데, 가끔 논두렁에서 도롱뇽을 만나거나 밭두렁에서 땅강아지를 만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기도 했다. 물장난, 흙장난이 지겨워질 즈음 둘째 큰아빠의 고추밭에 가서 일손을 도왔는데, 그때는 고추나무만큼 키가 작아서 도랑을 기어 다니며 고추를 따는 게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쉬웠달까.
옷 아랫소매를 당겨 바구니 삼아 고추를 가득 담아오면 사촌들과 누가 많이 땄는지 내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둘째 큰아빠를 심판으로 세워두고 함께 숫자를 헤아리면서 누가 더 많이 땄다 아니다로 실랑이를 벌이며 놀았다. 그렇게 한참을 고추 따기에 맛 들여 있다 보면 저 멀리서 큰엄마가 큰 밥솥과 양은그릇 몇 개를 담은 소쿠리를 들고 밥 먹으라고 소리쳤다.
둘째 큰아빠와 우리가 비오듯 흐르는 땀을 닦으며 흙바닥에 동그랗게 앉으면 큰엄마는 중앙에 소쿠리를 내려놓았다. 하얀 쌀밥에 올려진 콩나물을 주걱으로 스윽 섞으면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고, 콩나물 머리와 몸통이 분리돼 누구는 콩나물 머리가 잔뜩 담긴 밥그릇을, 또 누구는 몸통만 잔뜩 담긴 밥그릇을 받았다. 투덜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척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쌀, 콩나물, 간장 모두 직접 키워 담근 음식이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입이 늘면 밥솥 대신 가마솥을 사용했고, 가마솥 밥을 도로 밥솥에 퍼 담아 콩나물이나 감자, 고구마 등 곁들이기 좋은 채소를 넣고 한 번 더 뜸 들여 밥상에 내놓곤 했다.
콩나물은 아작아작 씹혔다. 몸통은 적당히 숨죽어 유연했고 머리는 고소하고 감칠맛 났다. 매콤한 고추와 짜고 달곰한 간장이 어우러져 반찬이 따로 필요 없었다.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둘째 큰아빠는 그렇게 맛있냐며 고춧잎 몇 장 뜯어 냇물에 씻어왔다. 내가 숟가락 한가득 밥을 푸자 그 위에 고춧잎을 올려줬는데, 깻잎처럼 고소하면서도 쌉싸름한 게 일품이었다.
정이 많은 둘째 큰아빠는 지금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갖가지 작물을 보내주신다. 봄이면 논과 밭 주변에서 캔 쑥이나 달래를, 여름이면 고추밭에서 딴 고추와 고춧잎을, 가을이면 뒷산에서 따거나 주워온 감, 밤, 대추를, 겨울이면 비닐하우스에서 지난 한 계절 동안 말린 시래기. 무엇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시골에 내려가면 둘째 큰아빠와 다정히 논으로 밭으로 마실 다니곤 한다. 고추밭이 있던 자리가 저수지로 바뀌어 서운한 마음이 들 때면 괜스레 그때 먹었던 콩나물밥 이야기를 하며 애꿎은 입맛을 다신다.
“그렇게만 먹어도 충분히 맛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