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장아찌
그날 엄마와 나는 거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노오란 볕을 깔고 앉아 마늘을 깠다. 대야를 사이에 두고 엄마는 주먹만 한 통마늘의 뿌리를 칼로 썰어 마늘 대와 알맹이를 떼어냈고, 나는 알맹이를 받아 물에 담갔다가 꺼내 밑동을 잘라내고 껍질을 깠다. 꽤 오랜 시간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마늘을 까다 보니 대야가 바닥을 드러냈다. 엄마는 깐 마늘을 물에 한 번 더 씻어낸 후 일부를 덜어 유리로 된 저장 용기에 담았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둔 식초물을 붓고 용기 뚜껑을 힘껏 닫았다.
며칠 뒤면 아주 맛있는 장아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알싸한 마늘이 톡 쏘는 식초와 달달한 간장을 흡수해 씹으면 아삭할 거라고, 따뜻한 밥에 찬물을 말아 장아찌 한 조각 올리면 알알이 흩어지는 밥알 틈새로 적당히 시큼하게 입맛을 돋울 거라고, 다른 반찬 하나 없이 마늘장아찌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한 달이 지나도 식탁에는 마늘장아찌가 올라오지 않았다. 그다음 달이 되어서야 양념이 스며든, 내가 상상했던 마늘장아찌가 오목하고 투명한 유리그릇에 담겨 식탁에 올라왔다.
“이게 손이 얼마나 가는 음식인데, 한 달은 계속 신경 써줘야 먹을 수 있어.”
그제야 알았다. 장아찌는 익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걸.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꽤 오랜 시간 공들여야 그 맛이 빛을 발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엄마의 다음 말을 듣고 난 후에 문득 사람이나 장아찌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중요한 건, 지나치게 익히면 물컹거려서 씹는 맛이 없고, 너무 셔빠져서 맛이 떨어진다는 거야. 딱 알맞을 때 꺼내 먹어야지.”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입 밖으로 꺼내는 말보다 머릿속으로 하는 말, 즉 생각이 더욱 익숙하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때가 되면 스스로 생각할 줄 알게 되고, 어느 틈엔가 살아온 경험이 쌓여 사고 방식이 성숙해진다. 물론 모두에게 해당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염려증’처럼 걱정이 지나쳐 일어나지도 않는 일 때문에 모든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뭐든 적당한 게 좋다. 생각도 장아찌도. 그래야 본래의 것을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