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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연박사 Aug 11. 2019

로봇이 대신하기 어려운
인간의 신체적 능력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직까지,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대결에서 대승을 거둔 사건 이후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여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은 다소 과장되어 있고, 너무 부정적인 모습만 부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알파고는 그저 바둑이라는 패턴을 잘 이해하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함수 덩어리일 뿐입니다. 알파고는 바둑은 둘 수 있으나 바둑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인간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인공지능이 너무 잘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큰 수를 곱하거나 미적분하기, 체스나 바둑 두기, 금융시장에서 투자결정 내리기 등과 같은 일들은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데, 인공지능은 너무 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인데, 인공지능은 너무 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진을 보고 개인지 고양이인지 구별하기, 동화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기 등과 같은 일들은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인데, 인공지능은 너무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모라벡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쉽다고 느끼는 일은 오랜 진화과정을 거치며 최적화되었던 반면, 인간이 어렵다고 느끼는 일은 생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과 관련한 다수의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이 잘할 수 있는 일과 분명하게 구분된다고 합니다. 이를 테면, 로봇이나 인공지능은 기억력이나 신체적 강인성, 시력, 청력, 공간 지각력에서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반면, 인간은 창의력, 설득, 협상, 말하기 등에서 월등히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고용정보원 박가열 박사는 “예를 들면 교수의 일 중에서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쪽은 갈수록 기계가 맡게 되지만, 지식의 의미를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시키는 일은 사람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왜 이런 문제를 푸는지, 이런 수학적 지식을 어떻게 사회문제에 적용할 것인지 학생들과 토론할 수 있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수학 교수다”라고 설명합니다. 인공지능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제리 카플란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기계는 노동자를 대체하지 않는다. 특정 업무를 할 뿐이다. 당신이 맡은 모든 업무를 기계가 수행한다면 당신은 직업을 잃는 게 맞다. 하지만 당신이 맡은 일의 일부만 기계가 할 수 있다면, 당신의 생산성은 향상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인공지능이나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엄밀히 생각해보면 직업(job)이 아니라, 과업(task)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앞에서 저는 인간의 능력을 신체적 능력, 지적 능력, 정서적 능력으로 구분했습니다. 이 중 신체적 능력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한동안 기계나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을 신체적 능력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선 힘과 속도에 있어서는 기계가 이미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넘어섰습니다. 아주 먼 과거부터 인간은 신체적 능력으로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일을 동물이나 기계의 힘을 활용해왔습니다. 빠른 속도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힘과 속도 측면에서 인간의 능력으로 기계에 대체되지 않는 능력은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정교한 동작도 인간보다 기계의 능력이 월등해지고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의료로봇연구단은 2017년에 미세수술 로봇 ‘닥터 허준(Dr. Hujoon)을 개발했습니다. 이러한 로봇의 개발로 과거 보다 훨씬 정교하고 안전한 수술이 가능하게 되었고, 척추수술, 뇌수술, 안과시술 등 미세수술 영역에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교함이 가능해진 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오감을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닥터 허준의 사례는 인간의 감각 중 ‘시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이미 닥터 허준이 나타나기 전부터 인간의 시각을 초월한 기술들이 많이 개발되어 왔고, 이것을 응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청각은 어떻습니까? 청각의 경우에도 인간은 30~30,000Hz의 주파 대역만 들을 수 있지만, 기계는 이 범위를 벗어나는 것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인간 보다 훨씬 정확하게 말이죠. 냄새도 공기청정기를 사용해보신 분들은 이산화탄소나 냄새 등을 감지하는 센서 기술이 상당히 발전되어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도 미각은 기계가 대신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장은 그렇지만 이 마저도 조만간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IBM에서는 휴대 가능한 소형 장치를 통해 액체 성분을 판별할 수 있는 전자 혀 ‘하이퍼테이스트(Hypertaste)’를 개발 중입니다. 하이퍼테이스트는 ‘조합 센싱(Combinatorial sensing)’ 기술을 이용해 최소한의 하드웨어로 고도의 액체 분석을 지원합니다. 그리고 수집한 데이터는 단말 및 클라우드 상에서 훈련된 머신러닝 알고리즘으로 분석하게 됩니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액체 데이터베이스 가운데 검사 액체와 과학적으로 가장 유사한 것을 판별하는데, 분석 결과가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미만이며, 모바일 앱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기술로 인해 미각을 주로 사용하는 와인 소믈리에와 같은 직업은 와인을 감별하는 테이스팅을 하는 것이 직업의 경쟁력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촉각’도 기계가 대신할 것입니다. 2019년 7월,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최창순 선임연구원 연구팀은 천성우 성균관대 박사 연구팀과 공동으로 압력과 진동을 동시에 감지해 물체의 질감을 효과적으로 측정하는 '인공피부 기반의 촉각센서'를 개발했습니다. 진동과 거칠기를 감지하는 고속 응답 수용체는 물체끼리 접촉해 발생하는 마찰전기 신호 진동을 측정해 거칠기를 구분하는 데, 서로 다른 종류의 직물 거칠기를 99% 이상의 정확도로 감지해 낸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감각들에 비해 촉각은 상용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인간의 오감을 기계가 대신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인간의 신체적 능력 중 기계에 대체되지 않을 영역은 무엇일까요? 바로 ‘틀에 박히지 않은’ 신체활동입니다. 


인간의 형태를 모습으로 한 로봇인 ‘휴머노이드’의 경우에는 과거에는 인간의 직립보행처럼 로봇이 걷는 것조차도 어려웠었으나, 현재는 보통의 인간이 가진 신체적 능력을 뛰어넘은 휴머노이드가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로봇 개발업체인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Dynamics)가 개발한 이족 보행 로봇인 아틀라스(Atlas)를 발표했을 때 많은 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복잡한 지형에서도 자동으로 자세를 유지하고 넘어져도 직접 일어나며 심지어 물건을 들어 올리고 옮기는 동작까지도 인간처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점프나 공중제비와 같이 인간도 하기 힘든 동작까지도 할 수 있고, 평평한 바닥이 아닌 야외 풀밭에서 빠른 속도로 달릴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체조선수들이 운동을 하는 평균대와 같이 좁은 곳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걸을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은 이 모습을 보고 영화에서나 보던 터미네이터가 현실에 등장했다고 경악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휴머노이드라도 변화가 심하거나 미지의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것은 아직 기술적으로 상용화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2009년 대구에 위치한 소방서에 정찰 로봇 ‘꼬마로봇’과 소방로봇 ‘파이로-에프(Firo-F)’ 45대가 배치되었고, 2011년엔 같은 로봇 42대가 추가 배치되었습니다. 2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개발한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7년간 단 한 번도 실제 현장에 투입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 재난 상황이 닥치자 장애물, 충격, 통신, 연기 등의 물리적 환경에 너무나 취약해 쓸모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2015년 미국 국방성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개최한 재난 로봇 경진대회인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ARPA Robotics Challenge)에서는 실제 원전 사고 현장처럼 꾸며진 경연장에서 총 여덟 개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는데, 예를 들면 밸브를 잠그거나, 도구를 이용해 벽을 뚫거나, 울퉁불퉁한 길을 통과하는 것 등이 있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의 TEAM KAIST가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최고의 재난 대응 로봇’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이 대회 당시의 영상을 보시면 재난 로봇이 실질적으로 인간처럼 재난 구호활동을 하는 것은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 대응 능력이 부족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신체적 능력도 틀에 박히지 않고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일이라면 한동안 기계가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틀에 박히지 않은’ 인간의 신체적 능력이 활용된 일자리는 무엇이 있을까요? 물론, 앞으로 멀지 않은 미래에 현존하는 상당수의 직업이 사라지거나 크게 변화되고, 또한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도 많을 것입니다.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존하는 직업을 가지고 설명드리겠습니다. 우선 앞서 재난 로봇이 앞으로 상당한 기술적 진보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렇기 때문에 소방관과 같은 직업들은 한동안 기계나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기 어렵습니다.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 갔을 때 주어진 다양한 상황은 예상하기도 어렵고, 시시각각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베테랑 소방관들이 안타깝게도 소중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우리는 많이 봐왔습니다. 재난 로봇은 이렇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에 인간을 대신할 수 있도록 부분적으로 먼저 개발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상당히 사용해야 하는 직업에는 미용사가 기계에 대체되기 어려운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용사가 손님의 머리를 다루는 일은 매우 복합적인 신체적 능력을 요구하고 동시에 손님의 특성, 요구 등에 따라서 매우 복잡하고 섬세한 대응이 필요한 과업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두상, 모질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래서 시각적인 판단 외에도 섬세한 처리를 위해 촉감을 통한 판단도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가위질이나 염색 등의 작업에도 다양한 각도와 힘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인간의 신체활동은 로봇으로 구현되기 매우 어렵습니다. 독자분들께서도 현존하는 직업 중 틀에 박히지 않고 복합적인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만약 본인의 직업이 신체적 능력을 상당히 사용해야 하는 직업이라면 틀에 박히지 않은 일들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도 함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기계로 구현하기 힘든 복잡한 신체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일자리 외에도 이미 기계가 힘이나 속도 등의 측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섰지만, 인간 중에서는 그래도 최상의 수준인 경우는 지속적으로 일자리가 유지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와 같은 것입니다. 운동선수라고 하더라도 힘에 있어서 기계보다 뛰어날 수 없고, 속도 측면에서도 기계보다 뛰어날 수는 없습니다. 정교한 움직임에 있어서도 기계보다 뛰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최상의 운동능력을 갖춘 인간들끼리 벌이는 스포츠 경쟁을 즐깁니다. 같은 맥락에서 프로게이머와 같은 직업도 기계가 대신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여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려고 하고 있으나,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게임 컨트롤 등에 있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수준을 사람들은 즐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음악 연주자나 댄서와 같은 직업도 유지될 것입니다. 2018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인공지능(AI) 작곡가가 만든 음원이 공개됐습니다. 인공지능(AI) 음반 레이블 ‘A.I.M’을 알리는 이 날 공개행사에서 댄서 팝핀현준은 AI에게 자신의 느낌에 맞는 음악을 요구했는데, 인공지능은 30초 만에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음악에 맞춰 즉석에서 춤을 췄고, 걸그룹 하이틴은 인공지능과 작곡가가 함께 만든 K팝 노래와 춤을 선보였습니다. 이렇듯 인간 아티스트와 인공지능 작곡가와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팝핀현준이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 것이나 음악 연주자가 인공지능이 만든 곡을 가지고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 것은 기계가 대신하기 힘든 일들입니다. 


또한 인간의 아름다운 신체를 주로 사용하는 일자리도 사라지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패션모델 같은 직업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만든 마네킹에 멋진 옷을 입혀도 아름다운 사람이 입은 멋진 옷처럼 아름답다고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다양한 상황에 맞춰 인간의 복합적인 신체적 능력을 사용하는 일들을 한동안 기계나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최상의 신체 능력을 사용하거나 신체의 아름다움을 주로 사용하는 직업도 기계에 의해 대체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일자리 중에서 틀에 박히지 않으면서도 신체적 능력을 상당히 사용하는 직업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틀에 박히지 않으면서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의 지적 능력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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