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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캐처 May 27. 2023

맘에 들어 산 새 신발 너마저 상처를 주고

아무 아픔이 없을리 없고

모든 것이 그렇고


나만 모르고, 아프고 나서야 배우고 그렇게 자라나고 또 살아간다.


어느 글에서 우연히 "먼저 어금니가 난 사람"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 바로 '언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엄마도 언니고, 할머니도 언니고, 몇  분 몇 초 며칠이라도 먼저 세상을 만났다면 아빠 오빠 남자 여자 굳이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원래 의미에 따라 언니다.


그저 나보다 먼저 나서 언니일 뿐 큰 의미는 없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 살아야만하고 어제보다 더 나은 모습이어야 하는 건 타인의 기대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자기대로 자기가 할 수 있는대로 나름대로 풍성하게 살아가고 있는 어떤 모습에 내가 기대하든 실망하든 당사자에게는 사실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식물이 적당한 습도와 온도, 수분 조건이 충족되어 때가 되면 그저 싹이 돋고 쭉쭉 자라나듯이, 사람도 그저 자신이 알고 할 수 있는 길로 계속 뻗어갈 뿐이다.


어릴 때는 주변 누구라도 보고 나도 잘 살 방법을 궁리해야 하니 어떤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보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난 이런 모습을 싫어하는구나. 저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위험하니 가까이 하면 안되겠다.' 안전을 위해 또 나를 위해 타산지석을 삼자고 생각했다. 어릴 때는 그저 보고 있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관찰자 시선이었는데, 그냥 살다보니 어느 덧 나를 언니로 보는 주변인들이 생겼다.


어린 조카가 나를 보며 '나도 나중에 그렇게 살아야지" 라는 말을 했다는 말이 들리면  무게감도 느끼고, 잘 산다는 것이 사실은 늘 힘듦 없이 웃음 소리만 가득한 건 아니니 웃긴 하지만 속으로는 마냥 좋고 뿌듯한 것만은 아니었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내가 어느 순간에라도 '잘 살고 있어' 하고 만족한 적은 그리 많지 않거나 거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언제 충돌해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한 지층 위에서 계속 이리 저리 살피고 부지런히 뛰고 달리는데, 멀리서 보면 풍경일 것이다.


지혜가 생긴 건지 좀 더 현명해 건지는 모르겠지만, 타산지석이고 뭐고 이제는 모든 삶 자체에서 있었을 막연한 땀과 고민과 애씀이 짠하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누구든 실수할 수도 있고, 아예 다른 선택지를 모를 수도 있고, 그 상황에서 시야가 좁아져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잘못된 행동을 선택할 수도 있으니까 무작정 비난 받을 이유는 없는지도 모른다.


내 삶 속에서 가장 오래 자주 중요한 무대 위에 주연으로 서있던 엄마 아빠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참 어렵고 어렵다.


살아계셨다면, 아마 이런 생각도 못하고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 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몸 관리를 잘 한 사람이라도 노년에는 대체로 힘이 없고, 기력이 쇠해 여기 저기 고장나고 긴급 사이렌이 울린다.


그냥 힘든 육체적인 일만 수십년간 하다 보니 더 이상 나을 것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내내 만성으로 아프니 정기적으로 약을 친구 삼아 지냈다. 때로는 두 분이 병원에 입원하고, 집을 바꾸고, 시장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사 먹고, 김치 담을 재료를 사는 것처럼 무언가를 먹고 살아가는 숨 쉬는 순간 순간이 경제적인 부분과 연관되니 매달 부양비를 감당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사람은 모두 원래의 작은 세포로 돌아간다. 사는 건 기쁨만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내가 고민없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렇게 하루 하루 먹고 자고 할 것을 하며 그냥 살고 있는데 나도 쭉 자라버렸다. 저절로 언니가 되어 있었다. 허송세월은 안했지만, 한 해 잔 해 넘겨온 햇수가 꽤 놀라운 숫자다. 엄마가 항상 얘기했었다.


'나는 이렇게 나이가 많고 늙었어도 지금도 내 마음은 꼭 열여덟살 같아' 이 말이 어떤 뜻으로 한 말인지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우리는 그저 각자 할 수 있는만큼 자란다. 먹고 자고 일하고 웃고 울며 자기대로 계속 뻗어간다. 끝은 모두 같다.


고통이 없는 건
이 세상에 없다.

그 흔한 사랑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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