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리 고생해야 했는지 특별한 이유는 알 수 없고
대체로 솔직한 편입니다. 어느 편인지 보기에 따라서 평가는 다르겠지만, 상황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순순히 바라는대로 묵묵히 하기보다는 '영 아니다 싶은 건' 안한다고 등을 돌리고, 위로는 어른들 아래로는 자식들 한가운데 있는 낀 세대 처지에 눈치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어머니께 과감한 결단을 촉구하기도 해요.
집안 제사를 다 없앤 건 '저의 되바라진 도발 한 스푼'도 작게나마 기여를 했어요. 처음에는 저의 쎈 말이 지분 100%인 줄 알고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그렇게 과감하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나 그런 생각에 잠긴 적도 있는데, 어제 오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또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어서 '묵묵히 시어머니 하시던 대로 따라드리지 못해 한 편 죄송스런 마음'의 무게를 살짝 덜었습니다.
하던대로 하고 싶고, 해서 싫을 것도 없고, 더 나은 대안도 딱히 없고 하면 그런 변화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안하겠다고 하면 갑자기 왠 무모한 파업이냐 감히 어른들 앞에서 버릇없이 집안 권위에 대드는 거냐며 어른들이 대단히 화를 낼 수도 있고 또 괜히 얼굴도 모르는 조상님께 큰 죄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그런 것이 바로 '차례' 혹은 '제사' 상 차리는 시간이죠.
산 사람 맛있게 먹으라고 차리는 상 아닌 거 알고, 하던대로 전통 계승한 메뉴 시장가서 잔뜩 사와서 허리 아프게 기름 잔뜩 머금은 전을 부치고, 명절 당일 새벽부터 시어머니가 어지러우나 피곤하나 상 차림 음식을 내느라 몇 시간 꼼짝을 못했었죠.
뭐가 빨리 안 나오네, 이런 타박하는 기다리는 분들의 이야기가 신성한 차례상 주변에 쌓이고, 주방은 바쁘고 정신 없는 와중에 독촉이 달갑지 않죠.
며느리로 맞는 명절 풍경은 이랬습니다. 몇 년을 거들어도 표준화가 어려운 가족 내의 제 업무는 담고 나르며 주방안에 머물며 시어머니 곁에 선 자로 영원한 졸병 레벨이면서 그냥 병품처럼 서 있다가, 묻고 답을 듣고, 다시 말을 전해서 요구사항대로 나가고 상에 빈 자리가 없을 즈음에 절을 하라고 하면 넙죽 합니다.
그리고 그리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음식들을 빙 둘러 앉아서 먹고, 일 년에 두 번 명절에만 봐서 영 친해지지 않는 먼 친척집에 가서 또 차려진 상에 있는 음식을 열심히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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