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고 싶은대로 보면, 미지의 세계는 복권이 될까?
너는 대체
무엇을 기대했나
9월 초에 모르는 누군가와 또 다른 누군가들이 '인생책'으로 추천하는 말들을 순수하게 믿고, 기회가 닿아 소설 <스토너>를 읽었어요.
인생에 벌어지는 일들은 예측 불가능한 것들이 많고, 당장 무엇이 된다고 해서 모든 걱정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그 상황에 맞닥뜨린 후 내 기준에서 볼 때, 그 시점의 주변 환경과 가용한 능력, 인맥과 자원에 맞게 쓸 수 있는 선에서 행동으로 옮기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계산할 것도 없이 솔직한 황갈색 땅에 기대어 살던 농부의 아들이 영문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가 되기만 하면, 다섯 기둥의 상아탑이 든든하게 자신을 보호해줄 거라는 어렴풋하고 막연한 기대를 안 할리 없지 않을까요? 주변에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보지도 못했고, 어떤지 들을 기회도 없었을테니까요.
부모님이 아들이 가업인 농사를 이어줄 것을 기대해 어렵게 농업대학을 보내준 상황 등 처한 형편을 고려하면 교수란 감히 될 수 있으리라 꿈꾸지도 못했고 가늠할 수 조차없는 '베일에 가려진 철저한 타인의 삶'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세계에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발을 내딛는 동시에, 부모님이 사는 동네는 자신이 더 이상 속하지 않은 낯선 과거, 추억의 영역으로 바뀌어 아련한 브라운 컬러 필터를 입었죠.
미지의 세계는 역시 주인공 스토너의 모든 순진한 예상과 달랐고, 편하게 내버려두는 법이 없죠. 세상 참 살기 참 힘들다 싶은 마음이 드는 게 한 두 번이 아닐테니, 주인공의 선택들에 꼭 동의하지 않더라도 힘겹게 버텨내는 선택들을 맞닥뜨렸을 때는 책을 읽는 우리도 그저 공감할 수 밖에 없었고요.
싫고 버겁다고 해서 그냥 끊어내 버릴 수 없는 인연들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때로는 억울한 상황에서 판도를 뒤집을 용기를 내지 못해 가만히 있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이리저리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들'에 휘둘리고 치이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이 책이 조용히 인기가 많은 건, 그저 순수하고 착하게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의 방증일 것입니다.
부인을 너무 밉게 그리지 않았냐는 의견을 스레드에서 댓글로 받기도 했는데, '스토너'라는 정직한 노동과 지극히 양심적인 흙의 결과물들 과실에 의존하며 살아온 사람의 기준에서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심연의 괴로움으로 똘똘 뭉친 한 여인이 바로 '이디스'였을 것입니다.
은행가 아버지의 자녀이자 마리오네트 꼭두각시 인형을 연기하는 운명 속 '이디스'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거울을 보며 자기다운 외모를 갖는 선택을 처음으로 하고 어머니에게 먼저 말하게 되죠. 결혼이든 뭐든 그 어떤 선택도 스스로 할 수 없고 부모님과 상의를 해야하는 성인은 독립된 자아를 지닌 어른이라고 볼 수 없고, 솔직히 표현하지 못한 예의바른 감정들, 도덕적이고 조신한 보조자이자 남편의 조력자 '좋은 아내'로 노력하며 사는 것이 타당하다는 교육을 강요 받았죠.
이디스가 보고 배운 '좋은 아내 역할', 과연 누구를 보고 학습한 것일까요? 본인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지 못해 마음 속에 단단해진 '앙금' (한국의 한의 정서) 이 얼굴에 '앙심'으로 드러난 이디스의 엄마일테지요.
엄숙한 시대로부터 본인에게 기대하는 의무는 짊어졌으나 자신 안의 결핍과 괴로움들은 당당히 마주해 본 적이 없어 가족 울타리 안에 주인공 기준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요상한 모습'으로 발현되는 것이죠. 연애와 결혼 사랑에 있어서 남자는 이래도 아무렇지도 않고 뭘 해도 되지만, 너는 여자라서 그 무엇도 안된다는 말을 떠올렸을 때, 마음이 답답한 구석이 느껴진다면, 스스로는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사회적 규율이라는 짐을 안고 '나답게 표현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좋게 평가하는 모습을 연기 하기 위해, 내내 눈치보며 사는 한 사람의 괴로움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겠죠. 본능과 욕망은 남자고 여자고 관계없이 모두 다 있는거니까요.
마흔이 되면 남자들이 누구나 사랑을 하고, 그 것이 중요하지 않은 일이며, 남편은 가정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정상적인 반응일까요? 너무 차분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오히려 더 등골이 서늘하고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이상하지 않나요?
부인인 자신이 느낀 배신감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이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온당치 못하다고 없는 셈 치자고 외면하고, 감히 표현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 시간이 더 지날수록 슬픔이 깊어지겠죠. 그레이스 엄마인 이디스는 엄마가 되긴 했지 만, 아직 독립된 자아가 되지 못한 채, 어찌할지 몰라 제 마음 속 수위가 높아지는 눈물의 강에 불안함으로 둥둥 떠다니는 눈치보는 그저 여린 아이인 셈이죠.
버거운 부모를 피해
도망친 그 곳이
천국일리 없습니다
Edith 라고 원서에 적혀있는데, 한국 소설은 이디스라고 써 있어서 IDs 라고 상상하며 읽었어요. 마음 먹은 대로 그리 쉽게 되지는 않는 자아찾기의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내가 말하는대로 될 수 있지만, 어떤 말을 해야하지 몰라서 또 미로를 빠져나갈 길이 도통 안 보일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무력감에 사로잡히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그냥 자포자기 심정으로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차차선 같더라도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살아지는대로 사는 것이고요.
이디스 없이 스토너와 이디스의 아버지 어머니의 대화 장면 뒤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부모님 입장에서 참 귀한 외동 딸이지만, '부인감'으로 두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때 여러 가지 처한 상황상 더 좋은 조건의 가문에서 데려갈 가능성이 사실은 거의 없어 보여서, 가진 것 없고 뻔한 월급과 가난이 예상되는 '스토너'가 그리 탐탁치는 않지만 결혼이 매우 급하게 대충 성사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이디스가 그 사람을 사랑을 하는지 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요. 부모님 판단에 순종하는 사람은 인생을 끌려다니는 기분으로 살겠죠. 아무리 정답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먼저 살아본 자인 부모로서 자녀의 고통을 미리 없애주고 싶은 건 사랑이지만 사실은 욕심이고, 자녀의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지만, 그 경계가 흐릿해서 여전히 판단하기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네 의견은 어때?"
"어떤 것을 고를래?"
이런 질문조차 없는 가정에서 엄마가 모두 정해준대로 하루를 살고, 아빠가 OK하는 신랑에게 탈출해서 해결 못한 커다란 불행을 하나 뿐인 딸 '그레이스'에게 그대로 대물림한 것이죠. 내 생각과 느낌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그 헛헛한 마음을 달래느라 매일 저녁 독한 '술'만 찾는 그레이스의 반복된 일상은 누가봐도 정상적인 삶은 아니니까요.
저는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거의 안 마시지만, 처음에 시원한 맥 주 한 캔에서 비롯되어 본인이 알코올 중독이 된 줄도 모르고 매일 밤 조용히 술을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습니다. 밝은 아침과 낮, 오후에 예의바르게 표현 못하는 감정들은 어두워지는 저녁과 늦은 밤에 그렇게나 흘러 나옵니다.
주인공의 삶에 대한 평가는 독자 개개인이 하는 것이고, 저는 '스토너의 정수를 담은 책 한 권'이 마지막 순간, 본인에게는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에 오래 생각이 머물렀어요. 자신의 분신으로 여긴 자녀는 언제든 자신의 여정을 위해 떠나는 분명한 타인이고, 직접 쓴 한 권의 책은 남들이 하찮게 여기든 말든,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한 자신의 삶 속 모든 것을 담은 또 하나의 나 같은 '존재'니까요.
세상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그 깟 책 따위하며 큰 의미없게 볼 수도 있는 대목이지만, 본인이 최후에 눈을 감을 때 그 한 권의 책이 마음에 남았으니 그러면 된 거 아닐까요.
결혼은 결코 대박이 아니고(사실 계약관계 중에 되게 유지하기 힘든 것/심플하지 않음), 자녀도 혼자 다 책임지고 다른 거 다 안하고 온종일 딱 붙어서 키울 거 아니면 내가 바라는대로 클 수 없고(한 사람의 성장은 가족과 온 마을의 영향을 받는 것/곁에 끼고 살 수 없음), 교수의 삶 또한 휘둘리고 밀리고 서늘한 모욕감을 느끼는 피할 수 없는 시점(직장인 누구나 은퇴를 향해가는 것)을 맞이했어요.
대박적 사고로 모든 것에 기대를 했지만, 그 순진한 기대대로 된 것이 단 하나도 없음에도 할 수 있는 것에 매진하며 노력하며 잘 살아왔습니다. 작가는 그래서 스토너의 인생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본 성공적인 삶'이 아니냐고 말했을 것입니다.
삶에 있어서 내 노력에 대한 결과가 내 뜻대로 안 될 수 있고, 무조건 득실을 따졌을 때 금전적인'득'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으니 '하면 된다'는 말은 '내가 하면 뭐라도 된다' 정도로 해석하면 좀 더 부드럽고 유연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빛나는 결과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을 유난히 강조하는데, 경쟁이 심해서 TO가 없으면 '노력이 나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이라는 걸 볼 줄 알아야 좌절하지 않습니다. 성실한 노력이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는 영역도 분명 있어요. 운동이나 식습관 생활습관 정리 정돈하는 습관이죠. 그 간 저도 이 영역을 잘 못해서 부단히 신경쓰려고 해요.
'내가 노력했으니 무조건 잘 되리라!'안일한 대박적 사고 대신 안온한 삶을 꿈꾸면서 평온한 하루 보내는 것이 요즘 저의 다짐이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살 수 없는데, 그렇게 반복적으로 살다보니 자꾸 '악'의 편으로 가까이 가서 제 몸에 열이 오르고 안 좋더라구요. 삶 속에서 지옥으로 가는 길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생각도 해봤어요.
몸에 남은 찌꺼기 감정도 있고, 비용과 부작용이 워낙 커서 이제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선'으로만 향하는 여정을 택했어요. 두루 살피고 그렇게 살기로, 저 스스로 정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나쁘게 악하게 악랄하게 누구 마음에 못 박고 피눈물 흘리도록 내버려두면서 살 사람은 그렇게 사는 거고요. 본인의 그런 선택에는 처절한 고독과 고통이라는 보이지 않는 응징이 마음에 쌓일테고 세상 그 어떤 비싼 약으로도 공허함이 채워지거나 치료는 결코 안될 거니까요.
언제 어떻게 누구와 만날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생각들을 끊임없이 모아볼지, 내 느낌과 감정과 삶을 어느 강물에 띄워 좋은 결로 이어갈지는 온전히 내 책임이고 내 선택입니다. 각자 나다운 삶을 찾아 여행하듯 탐험가가 된 것처럼 즐겁고! 유쾌하게! 살아보자구요.
스레드 25년 9월 2일
<Stoner>
About the Book
William Stoner enters the University of Missouri at nineteen to study agriculture. A seminar on English literature changes his life, and he never returns to work on his father’s farm. Stoner becomes a teacher. He marries the wrong woman. His life is quiet, and after his death his colleagues remember him rarely.
Yet with truthfulness, compassion and intense power, this novel uncovers a story of universal value. Stoner tells of the conflicts, defeats and victories of the human race that pass unrecorded by history, and reclaims the significance of an individual life. A reading experience like no other, itself a paean to the power of literature, it is a novel to be savoured.
About the Author
John Williams was born on August 29, 1922 in Clarksville, Texas. He served in the United States Army Air Force from 1942 to 1945 in China, Burma and India. The Swallow Press published his first novel, Nothing But the Night, in 1948, as well as his first book of poems, The Broken Landscape, in 1949. Macmillan published Williams’ second novel, Butcher’s Crossing, in 1960. After receiving his B.A. and M.A. from the University of Denver, and his Ph.D from the University of Missouri, Williams returned in 1954 to the University of Denver where he taught literature and the craft of writing for thirty years. In 1963 Williams received a fellowship to study at Oxford University where he received a Rockefeller grant that enabled him to travel and research in Italy for his last novel, Augustus, published in 1972. John Williams died in Fayetteville, Arkansas on March 4,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