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어 좀 못하면 어때

<세시 십분>과 <삼시 십분>

  “What time do you go?”

미국에서 산지 1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길에서 마주친 늙수그레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이 질문을 받은 내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라고요?

언제 가느냐고요?

어딜 가는데요?

언제 가는지 왜 물어보시는 거죠?


  그 남자가 다시 물었다. 

“What time do you go?”


  이번에는 한 손의 검지 손가락으로 다른 한 손의 팔목을 짚으면서 물었다.

아니 저 동작은?...

그랬다. 그는 <지금 몇 시인지> 시각을 물어온 것이다.


  그 순간 아주 오래전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께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시각을 물어볼 때에는 What time is it now?라고 물어보지만, 다르게 물어보기도 한다는 그 말.

What time do you have?라고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거 참…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들었던 그 말이 그 순간에 생각나다니…


  손목시계를 본 후 “2시 50분입니다.”라고 말했더니 “3시 10분 전…”이라고 말했다.

맞아… 저렇게 말하는 법도 배웠지.

10분 전 3시(ten to/before three), 10분 후 3시(ten past/after three).

다시 잠깐 중학생 시절로 돌아갔다.   


  영어?

배우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자.

우리말은 배우기가 쉬운가? 그런가?

<죽다, 가다, 돌아가다, 영면하다, 뒈지다, 사망하다, 서거하다, 별세하다, 작고하다, 운명하다, 눈을 감다, 세상을 뜨다, 숨을 거두다, 세상을 등지다, 세상을 하직하다, 아주 가다, 북망산으로 가다, 가고 오지 못할 곳으로 가다.>, 우리는 이런 표현을 안다.

쓰이는 곳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 모두는 크게 보아 같은 뜻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이게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영어의 die, decease, pass away에 해당하는 이렇게나 많은 말을 어찌 다 기억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어느 말을 어느 경우, 어느 때 쓰는 것인지 알게 되려면 상당한 고수의 경지에 이른 후에나 가능하다.

더 나아가 한자에다 고사성어까지 이해해야 하니 결국 대단한 실력이 필요하다.


  시각을 표현하는 것도 그렇다.

간단한 영어 시각 하나 말해보자. <three ten>.

이걸 외국인에게 가르친다고 해보자. 말로 가르칠 때에는 <세시 십분>이라고 가르치겠지.

그럼 종이에 쓸 때에는?

종이에 쓸 때에도 <세시 십분>이라고 쓸까?

대부분 사람들은 <3시 10분>이라고 쓴다.


  자, 이제 종이에 쓴 <3시 10분>을 읽어보자.

<세시 십분>?

<3시 10분>을 <세시 십분>으로 읽는다고?

아니 왜?

'삼'시 십분이 아니고 '세'시 십분이라고?

'10'은 '십'이라고 읽으면서 '3'은 '삼'이 아니라 '세'?

<1, 2, 3, 4>는 <일, 이, 삼, 사>로 읽는 게 아니던가?


  우리가 시각을 말할 때에 시간과 분을 말하는 기준이 다르다.

기수와 서수.

시간은 '한'시, '두'시, '세'시라고 말하지만

분은 '일'분, '이'분, '삼'분이라고 말한다.

'한'시 '일'분이라고 말하지

'한'시 '한'분이라고 말하지도 않고 ,

'일'시 '일'분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시각을 말할 때마다 이것을 매번 따지고 생각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말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말을 배우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고, 이렇게 한글로 글도 쓴다.

그 어려운 우리말과 한글을 이 정도로 쓰고 있으니,
까짓 영어 좀 못한들 어떠랴 싶다.


그런 생각으로 미국에서 산다.

좀 우습지만.




작가의 이전글 2pm/2am, pm2/am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